콤바인으로 벼를 수확했다. 볍씨 알알이 포대에 담겼다. 볍씨를 집 앞 햇볕 잘 드는 곳에 두고 말린다. 밤에는 이슬이 맺힐까 덮어두고, 아침엔 따스한 햇볕을 받도록 열어 고루 펴준다. 고루 펴주지 않으면 큰일 난다. 하루는 두툼한 곳에 웬 물이 묻어 있어 봤더니, 옆집 할머니가 먹이를 주는 길고양이가 똥과 오줌을 싸고 덮어놓은 것이다. 다행히 묻은 곳만 잘 떼어내 분리해냈지만, 이걸 못 보고 지나쳤다면, 밥 먹을 때마다 고양이 똥내가 날 뻔했다.
며칠 고생스럽게 말린 볍씨를 포대에 담았다. 200㎏쯤 되려나. 일반 농부들이 생각하면 ‘되도 않는 양’이지만, 우리에겐 감사한 양이다. 이런저런 노동을 하긴 했지만, 벼가 알아서 잘 컸다. 자연농에서 말하는 것처럼 농사는 자연이 다 하고 사람은 시중을 들 뿐이다. 하늘 높이 뜬 해가, 어둠 만드는 구름이, 땅 적시는 비가, 서늘하고 시원한 바람이, 온갖 벌레가 농사를 지어줬다. 관행농 논에 벼멸구가 다시 득실거릴 때도, 끄떡없이 잘 커줬다.
이제는 도정할 곳을 찾아야 한다. 볍씨를 먹을 수 있는 쌀로 바꾸는 것이다. 마을에 물어보니 집안에서 쓰던 기계들은 대부분 처분하고 없다고 하신다. 벼를 수확하면 기본 1t 이상이기에 대부분 정미소에 가서 도정한다. 여기저기 문의해본 결과 다행히 옆 마을 이웃이 가정용 정미기를 갖고 있다. 소주 한 묶음 사 들고, 이웃집에 쌀을 맡기러 갔다.
기계는 안 쓴 지 오래됐는지 뻑뻑했다. 이것저것 망치로 두드리고 건드리니 겨우 작동한다. ‘윙~’ 소리와 함께 볍씨가 도정된다. 도정은 두 단계로 진행된다. 맨 위에선 껍질을 벗겨내는 작업, 두 번째는 현미를 더 깎는 작업이다. 첫 번째에서는 왕겨가, 두 번째에서는 쌀겨가 나온다. 수확한 일부 50~60㎏쯤 되는 쌀을 낑낑 메고 찾아갔는데, 순식간에 도정됐다. 절반도 안 되는 양이 도정돼 나왔다. 도정될 때 손은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후두두두 쏟아지는 쌀알 속에서 뉘를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뉘는 왕겨가 벗겨지지 않은 벼 알갱이다. 툭툭 떨어지는 뉘를 열심히 찾아 빼낸다.
현미는 거칠고 소화가 잘 안돼, 7~8분도로 깎았다. 쌀을 깎는 정도를 분도라 나타내는데, 10분도는 쌀눈까지 깎는 백미, 0분도는 왕겨만 벗겨진 현미다. 아깝지만 맛있게 먹으려면 어쩔 수 없다. 깎이는 과정에서 많은 쌀겨와 왕겨가 나왔는데, 아뿔싸! 이 기계는 쌀겨와 왕겨를 분리하지 않고 한꺼번에 받는다. 포대 속에서 왕겨와 쌀겨가 엉겨버렸다. 쌀겨는 닭의 밥이나 최근 키우고 있는 밀웜 밥으로 이용한다. 또 왕겨는 생태 화장실, 멀칭 등 사용처가 많은데, 이 귀한 것이 다 섞여 나오다니 너무 아깝다. 집에 와서 채에 걸러 일일이 왕겨를 분리했다. 마스크라도 쓰고 해야 했는데, 그러질 않았다. 쌀겨와 함께 목감기와 코감기도 함께 얻었다.
드디어 맛볼 차례. 우려와 달리 뉘도 많이 없어 다행이다. 따끈한 햅쌀밥을 먹는 기분이란, 뿌듯하기 그지없다. 한 수저 떠먹으니, 입안에서 따끈한 쌀알이 포슬포슬하게 뛰어논다. 갓 도정한 쌀이라 그윽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고들빼기김치와 밥만 먹는데도, 한 그릇이고 두 그릇이고 계속 먹고 싶어진다. 내년에도 또 벼농사 지어야겠네. 직접 농사 안 짓고는 이런 맛을 느낄 길이 없다.
글·사진 박기완 토종씨드림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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