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란 우두머리 구속 뒤 맞은 주말, 텃밭 동무들이 단골 고깃집에 모여 올해 영농 계획을 의논했다.
농사는 절기에 따라 짓는다. 소한·대한 다 지나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2월3일)을 맞았는데, 평균 최저기온이 영하 8.2도다. 종일 칼바람이 매서웠다.
기상청의 기후통계분석 자료를 보니, 최근 30년(1995~2025년) 동안 올해보다 추웠던 입춘은 2006년(영하 13.1도)과 2018년(영하 12.8도) 등 모두 6번이다. 2022년엔 올해와 같은 기온을 보였고, 2024년엔 영상 3.7도로 따뜻했다. 겨울이 한창이니 춘첩(입춘에 한 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는 글귀를 써서 대문이나 기둥에 붙이는 종이)을 내걸기도 객쩍다. 그래도 안다. 우수(2월18일)·경칩(3월5일) 지나 춘분(3월20일)이 다가올 즈음 우리는 씨감자를 내며 한 해 농사를 시작할 게다.
대통령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가 터지더니, 항공기 참사로 국가애도기간까지 선포됐다. 해마다 하던 텃밭 송년모임을 기한 없이 늦출 수밖에 없었다. 애도기간이 지나고 내란 우두머리도 구속된 뒤 맞은 주말, 텃밭 동무들이 단골 고깃집에 모였다. 밭장은 피치 못할 약속으로 함께하지 못했다. 넓은 솥뚜껑 모양 불판에 돼지고기와 김치, 콩나물 등을 잔뜩 올렸다.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며 다 같이 잔을 들어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반겼다. 김장 농사 마무리한 게 엊그제 같은데 그새 달포가량이 훌쩍 지났다.
지난해 가을 농사를 망친 건 전적으로 날씨 탓이다. 달궈진 여름은 오래도록 이어졌고, 가을은 보름 남짓 만에 겨울로 교체됐다. 아무리 삽질을 많이 하고 퇴비를 잔뜩 넣어도 날씨를 이길 순 없다. 올해 농사의 성패도 결국 날씨에 달렸다. 어찌해야 하나? 다들 입맛만 다실 뿐, 주저주저 안을 내지 못한다.
“정말 콩을 잔뜩 심어볼까요?” 지난가을 잠깐 나온 얘기를 막내가 다시 꺼낸다. “한쪽에 쌈채소 몇 고랑만 내고, 나머지 밭엔 콩류만 한번 심어보죠. 콩 심으면 땅심도 좋아진다는데.” ‘콩 심자’는 말은 지난가을 배추 200포기를 속까지 아낌없이 파먹은 좁은가슴잎벌레 때문에 나왔다. 배추 대신 콩을 심어 1년간 먹잇감을 끊으면, 지긋지긋한 녀석들과도 작별을 고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제법 깜찍한 발상이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콩류는 생육기간이 길다. 서리태만 해도 통상 5~6월에 뿌려 10~11월에 거둔다. 온 밭에 콩을 뿌리면 가을 농사를 포기해야 하는 건 물론 봄 농사 짓기도 애매해진다는 뜻이다. 잠시 떠올려봤다. ‘감자, 고구마, 옥수수, 방울토마토, 가지, 오이, 호박, 당근, 청양고추, 일반 고추, 꽈리고추, 각종 상추와 쌈채, 시금치, 공심채, 고수, 아욱, 쑥갓, 바질, 대파, 부추, 작두콩, 수세미….’ 봄 농사 시작과 함께 텃밭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일 온갖 작물이 눈에 선했다. 맏형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무리 벌레가 무서워도, 배추는 심어야 할 거 같은데….”
송년회 겸 신년회에선 결론을 내지 못했다. 불참한 밭장이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원래 영농은 대보름부터 시작입니다.” 대보름(2월12일) 낀 주말에 을사년 시농제를 겸해 텃밭에서 올해 첫 불을 피우기로 했다. 영농 계획은 그날 다시 머리를 맞대 정하잔다. 그래, 햇볕과 바람과 구름과 비의 정령을 모셔 조언을 구해보는 것도 좋겠다.
글·사진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지역이 다른 세 명의 필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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