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매일같이 네팔 친구들과 함께 쓰레기를 분리한다. 내 본업이 인테리어설비업체 대표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아 현장에서 직접 작업할 때가 종종 있다. 2021년 7월 현재 담당하는 공사현장이 네 곳이다보니 배출되는 쓰레기양이 꽤 된다. 일반쓰레기가 아닌 산업폐기물이기에 구체적으로 분류해야 한다. 철, 비철(알루미늄·스테인리스 등), 가전(냉장고·에어컨 등), 플라스틱, 종이 상자, 목재, 그리고 시멘트나 콘크리트, 석고보드 같은 어디에도 분류되지 않을 잡쓰레기. 분류된 쓰레기를 싣고 일본 도쿄 인근 사이타마의 중간처리장으로 간다.
사이타마현 미사토시와 고시가야시에는 산업폐기물 중간처리장이 엄청나게 모여 있다. 지바의 몇몇 곳과 더불어 간토 지역 쓰레기가 다 모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로 이용하는 곳은 베트남·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운영하는 처리장이다. 이들에게 에어컨·냉장고를 버리면 돈을 준다. 일반 가정용 에어컨은 2천~3천엔, 냉장고도 1천엔(약 1만500원) 정도 받는다. 이들은 이 제품들을 적당히 고치거나 부속을 분리한 뒤 자신들의 나라에 수출한다. 철은 ㎏당 10엔(약 105원)을 받으며 비철은 15엔으로 책정됐다.
종이 상자는 미나미센주의 폐지 재활용 공장에 가져가면 공짜로 처리할 수 있다. 이 공장은 종이 상자를 대형 분리기계로 찌그러뜨려 단단한 종이 뭉치를 재창조한 뒤 제지회사에 넘긴다. 우리가 갖다주는 폐지가 재활용돼 다시 시장에 나온다. 목재는 시내 곳곳의 오래된 목욕탕에 갖다준다. 요즘엔 좀 힘들다. 나무를 태우는 전통 방식의 목욕탕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어쨌든 뭔가를 부수거나 공사 뒤 나오는 쓰레기 중 직접적 비용이 발생하는 산업폐기물은 플라스틱과 잡쓰레기밖에 없다.
처분비용은 보통 ‘규모’로 판단한다. 잡쓰레기는 1㎥당 2만엔(약 21만원), 목재는 5천엔쯤 든다. 우리 같은 공사업자들이 쓰레기를 중간처리장에 갖다주면, 중간처리장은 그것을 모아 정기적으로 최종처리장에 넘긴다. 최종처리장은 잡쓰레기로 분류된 것을 매립해왔다. 하지만 요즘엔 재활용 기술 발전, 그리고 매립장 포화라는 물리적 문제로 가능한 한 재활용한다. 환경성 누리집을 보면, 시멘트 콘크리트 재활용률은 거의 98%에 이른다. 이는 전적으로 2000년 제정된 ‘건설 리사이클법’ 때문이다.
현재 일본은 쓰레기 재활용의 최선진국이라 불린다. 한 번이라도 일본을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일본의 길거리는 정말 깨끗하다. 그러면서 일본의 국민성을 거론한다. 하지만 나는 국민성보다 일본의 쓰레기 관련 법률과 행정 시스템이 철저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2021년 현재 일본의 쓰레기 관련 법률은 17개에 이른다. 특히 재활용 관련 법은 △용기포장 리사이클법(1995년) △가전 리사이클법(1998년) △건설 및 식품 리사이클법(2000년) △자동차 리사이클법(2001년) △소형 가전 리사이클법(2013년) 등 다섯 부분으로 나뉘며 각 법률의 세부사항도 구체적으로 짜였다. 앞서 언급한 건설 리사이클법의 경우 건설 폐기물, 아스팔트 콘크리트, 일반 콘크리트, 건설 발생 목재, 건설 오수 등 20여 개 항목으로 나눠 각각의 폐기물 처리 절차를 명시한다.
왜 이렇게 엄격하게 지정할까. 이유는 산업폐기물 불법투기로 일본 사회가 몇 차례 고역을 겪었고, 지금도 불법투기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가령 2021년 7월3일 발생한 시즈오카현 아타미시 산사태의 원인도 불법투기에서 비롯됐음이 밝혀지고 있다. 택지 조성을 위해 산 중턱에 새롭게 흙을 쌓았는데 그 흙 밑에 폐타이어, 폐목재, 화학품 용기 등 대량의 산업폐기물이 숨겨져 있었다. 이번뿐만이 아니다. 7년 전에도 규모는 작지만 비슷한 산사태가 근처에서 발생했다. 그때도 산사태 더미 속에 건설·화학 관련 폐기물이 발견됐다고 한다. 아타미 산사태는 발생 이후 3주가 지난 지금도 복구 중이며 해당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성은 전국의 택지 조성 개발용지를 전수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것도 유례없는 ‘고도성장기’(1960~1980년대)와 ‘버블’(1985~1991년) 시기의 쓰레기 대란에 비하면 별것 아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한국전쟁 특수가 있었다곤 하지만 1955년 국민 전체 가처분소득은 7조엔에 그쳤다. 그랬던 것이 1980년에는 214조엔으로 무려 30배 이상을 기록했다. 가처분소득이 늘어나면 그것에 비례해 쓰레기 총량도 늘어난다. 얼핏 화려해 보이는 고도성장기 이면에는 쓰레기와 관련해 온갖 피해도 나왔다. 대표적인 것이 미나마타병과 이타이이타이병이다.
미나마타병은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에 있는 신일본질소주식회사(현 JNL)가 바다(미나마타만)에 지속적으로 내다버린 수은으로 인한 신경계 계통 질환을 의미한다. 2001년까지 공식 발표된 환자 수만 2265명이며 기업에서 재정 보상을 받은 이는 1만 명에 이른다. 신일본질소는 1956년 이 사건이 최초로 밝혀진 이후에도 1968년까지 12년간 진실 공방을 하며 계속 메틸수은 합성물을 버렸다. 지금도 5월1일이 되면 미나마타병 특집 기사가 실리며, 유아 시절에 앓은 미나마타병으로 2020년 현재도 고통받는 70대 환자가 있다.
이타이이타이병도 마찬가지다. 만성 카드뮴 중독에서 비롯되는 신장병도 비슷한 시기에 발견됐지만, 정부의 공식 인정은 1967년에야 이뤄졌다. 약 12년간 하천과 바다로 흘러나간 카드뮴을 섭취한 생선과 생활용수를 인간이 먹었다. 공식 환자 수는 2011년까지 196명으로 미나마타병보다 적지만 실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걸렸는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두 병은 결과적으로 일본 쓰레기법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폐기물처리법(1970년)을 신설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에는 공중위생 향상이라는 막연한 목적을 띤 청소법(1954년 제정)만 있었다. 하지만 고도성장기에 돌입하면서 앞서 소개한 각종 원인을 알 수 없는 공해성 질병이 등장하자 ‘공중위생 및 생활환경의 보전’을 목적으로 한 폐기물처리법을 제정했다. 그리고 이 법에 따라 일반폐기물과 산업폐기물이 구분되기에 이르렀다.
음식물쓰레기 등 일반폐기물은 행정 시스템이나 법령이 복잡하지 않다. 소각용 쓰레기(종이·옷·음식물 등)와 타지 않는 쓰레기로 나눈다. 전자는 소각하고 후자는 리사이클이나 매립을 한다. 소각용 쓰레기는 태울 때 나오는 일산화탄소 등이 대기오염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점점 세밀하게 분류한다. 각 소각장이 아무리 환경 관련 설비를 구비해도 대기오염 자체를 막을 순 없기 때문이다. 음식물쓰레기는 사료 재처리장에서 비료로 재활용되고, 소각할 때 나오는 고열을 활용해 전력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이를 ‘쓰레기 화력발전’이라 하는데 2000년대 시작됐고, 지금은 쓰레기 방출량이 많은 대도시에서 정착됐다. 어차피 전력을 생산할 때 환경을 오염시킬 수밖에 없으므로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쓰레기 소각을 전력 자원으로 활용해보자는 아이디어다. 하지만 절대적인 쓰레기양의 감소와 처리 불가능한 불법투기를 줄이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일반폐기물은 해당 기초지역단체의 관할 범위가 뚜렷하기에 주민들 입장에선 불법투기 자체가 힘들다. 또한 쓰레기를 분리해서 집 앞에 내놓기만 하면 지자체에 등록된 쓰레기업자가 무료로 회수해 가기에 개인의 문제가 생길 여지가 없다. 물론 쓰레기 수거업체가 수거한 쓰레기를 불법투기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럴 경우 바로 등록면허를 내놔야 하므로 업체 입장에서도 위험 부담이 크다. 그렇다면 문제는 산업폐기물이다.
앞서 말했듯 일본은 산업폐기물의 중간처리장 처분비용이 꽤 세다. 잡쓰레기는 갖다 버리는 것만 1㎥당 2만엔이 소요된다. 또한 중간처리장까지 가는 차량 렌트비, 운반업자 비용까지 계산한다면 t당 10만엔은 잡아야 한다. 영세한 공사업자일 경우 이 막대한 금액 때문에 불법투기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하며, 실제로 불법투기하는 업자도 꽤 있다. 그렇기에 강력한 법제도와 행정 절차가 제정됐다. 건설 리사이클법에 따르면 공사업자들은 발주처에 먼저 산업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설명할 의무를 진다. 그리고 발주 계약서에 쓰레기를 어느 중간처리장에 갖고 갈 것인가 명기해야 한다. 건물 해체는 더 구체적인데 산업폐기물 처리 사전계획서와 고지서, 해체 순서 등을 지자체에 제출해야 한다. 물론 해체가 다 끝나면 해체 완료 보고서를 작성하고 중간처리장의 확인서를 첨부해 다시 지자체에 제출한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아예 교육 측면에서 쓰레기에 관한 의식을 주입한다. 일본 환경성이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시행하는 ‘순환형 사회 형성을 위한 3R’ 교육이 그것이다. 3R은 ‘Reduce(절감), Reuse(재사용), Recycle(재활용)’의 첫 글자에서 따왔는데 초등학생 저학년 교과서에 의무적으로 실리고 시험문제로도 출제된다. 어릴 때부터 세뇌교육에 가까울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교육해야 환경의식이 자리잡는다. 이 시기(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정착된 쓰레기 재활용 관련 법안·의식 교육은 20년이 지난 지금 비로소 정착되고 있다.
‘순환형 사회’를 위해 모든 쓰레기를 100% 재활용한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운 뒤 세부 방침으로 해당 법령을 구체적으로 정비하고 국민에겐 3R을 끊임없이 홍보한다. 그 결과 일본의 쓰레기 총배출량은, 환경성 보도자료 등을 참고하면 2006년 4억7천여만t(산업폐기물 4억2168만t, 일반쓰레기 5272만t)을 정점으로 점차 하락세를 보여 2018년엔 산업폐기물 3억8354만t, 일반쓰레기 4272만t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소각시설도 2006년 1200여 곳에서 2019년 현재 1082곳으로 약 100곳 줄어들었다.
플러스 성장에도 쓰레기 절대량 줄어들어물론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과 아타미 산사태 등으로 환경 분야에 관한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각종 수치를 보면 고도성장기의 무분별한 환경의식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혹자는 ‘잃어버린 30년’이 말하듯 경제활동이 위축돼서 쓰레기 절대량이 줄어든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일본 경제는, 코로나19 사태가 오기 전 미미하긴 하지만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해왔음에도 쓰레기 절대량이 줄어들었다. 이는 곧 환경문제에 관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역시 쓰레기 처리에서 일본의 법제도를 본떠 구체적인 규제를 마련하면 어떨까 싶다.
도쿄=글·사진 박철현 일본 데쓰야공무점 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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