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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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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로드] 페트병 재활용 공장: 씻고 씻고 또 씻고

등록 2021-08-01 01:10 수정 2021-08-03 16:03
2021년 7월6일 서울 구로구 항동에 있는 구로자원순환센터의 재활용 선별장. 노동자들이 재활용이 가능한 것을 골라낸다. 플라스틱은 PET(페트병), PE(뚜껑·세제통), PP(배달용기), PS(요구르트병)로 분류하고 유리는 백색·갈색·녹색으로 나눈다. 류우종 기자

2021년 7월6일 서울 구로구 항동에 있는 구로자원순환센터의 재활용 선별장. 노동자들이 재활용이 가능한 것을 골라낸다. 플라스틱은 PET(페트병), PE(뚜껑·세제통), PP(배달용기), PS(요구르트병)로 분류하고 유리는 백색·갈색·녹색으로 나눈다. 류우종 기자


*[쓰레기로드] 선별장 “검은 봉지를 보면 겁이 난다”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0712.html

재활용 공장: 씻고 씻고 또 씻고

선별장에서 옮겨온 페트병이 경기도 김포 통진읍 준영산업 공장 앞에 압축돼 묶여 있다. 육면체로, 한 묶음에 500~600㎏쯤 된다. “냄새가 나지요?” 맹성호 준영산업 대표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냄새의 진원은 페트병 묶음이다. 특히 단독주택에서 수거한 페트병은 투명·갈색·녹색·유백색이 뒤섞여 있고(2020년 12월부터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이 의무화된 공동주택에서 온 것은 투명 페트병끼리 묶였다) 내용물이 남거나 표면에 흙먼지가 묻어 있다. 분리배출과 선별장을 거쳐 살아남았건만 여전히 이런 몰골이다.

이 회사는 페트병을 갈아 작은 조각으로 만든다. 플레이크, 펠릿, 칩 등으로 불리는 조각 상태라야 섬유나 페트병 같은 재활용 제품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창고와 마당을 빼고도 3천㎡, 1500㎡ 공장 두 동이 붙어 있다. 안에는 기계가 가득하다. 컨베이어벨트로 이어진 기계는 페트병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기계가 꽉 차 있으니 보고만 있어도 배부르겠다”고, 주책맞게 떠들고 말았다. 맹 대표, 완곡하게 꾸짖는다. “일본 사람들도 와서 기계가 참 많다고 그러기는 했어요. 그건… 놀리는 것이었죠.”

놀리는 게 맞다. “선별·세척에 들이는 공이 50%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맹성호 대표) 선별장을 거쳐왔는데도 씻고 또 씻는 일에 공들인다. 기계는 페트병을 더 짓누르고 핀으로 라벨을 긁어낸다. 그다음 ‘뜨듯한’(80℃쯤 된다) 거품 품은 물에 페트병을 빨래 불리듯 불린다. 표면에 묻은 이물질과 남은 라벨을 떨어지기 쉬운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다. 그리고 씻는다. 최소한 세 차례 기계를 옮겨가며 씻고 또 씻어도 표면의 이물질과 라벨은 단단해 쉽게 떼어지지 않는다. 그 옆에선 색깔별로 페트병을 나눈다. 이윽고 페트를 조각냈다. 이 조각들을 물에 풍덩 넣어 뜨는 뚜껑(대개 고밀도폴리에틸렌)과 라벨, 가라앉는 페트 조각으로 분리한다. 그리고 또 씻는다. 재활용 제품의 청결이랄지 안전성을 위해 세척은 불가피하다. 다만 배출이 조금만 더 깨끗이 됐더라면 이 정도 공력은 필요 없었다. 굉음을 뿜어내는 기계 틈새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기계가 토해낸 비닐과 이물질을 쓸어담는다. 공장 노동자 25명 가운데 11명이 외국인 노동자다. “사람 구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처우를 떠나서 더럽다는 인식 때문인 것 같아요.” 맹 대표가 읊조린다.

재활용 공장의 부끄러운 냄새, 더럽다는 인식은 당연하지 않다. 창고를 가만히 보면 깔끔한 투명 폐페트 뭉치도 있다. 반가워 물으니, “일본에서 온 것이에요. 저렇게 깨끗하니까 도심 가까운 곳에 (재활용 공장을) 짓기도 하더라고요.” 맹 대표 얼굴에 부러움이 스쳤다. 페트병을 씻고 라벨을 떼어 배출하는 시민 덕분이다. 색깔을 더하거나 특별한 모양으로 만들기 위한 첨가제를 자제하는 생산 방식도 페트병(더 나아가 폐플라스틱 전체) 분류에 힘이 덜 들게 하고 재활용 품질을 높인다. 수거업체와 재활용 시설이 시달리는 민원을 줄일 수 있다. 분리배출과 생산 원칙을 정해 20년 넘게 교육·훈련한 결과다. “거기까지 가는 게 쉽지는 않겠죠. 일본은 시민 역할이 큰 편인데 그것만 길은 아닐 수도 있어요. (정부나 기업이) 재활용 처리 과정이나 기술에 좀더 투자할 수도 있겠죠.” 재활용 과정에 부담은 불가피하다. 재활용은 정부·기업·시민이 어디까지 부담을 나눠 지느냐의 문제로 결국 이어진다.

쌓인 페트병을 둘러싼 고민은 그저 얼마나 더럽고, 깨끗한지에 그치지 않는다. 사실 2021년 들어 냄새나는 페트병마저 구하기 어려워졌다. 코로나19 확산 뒤 다시 유가가 오르고 산업 생산이 늘면서 석유 제품의 대체 원료인 페트병 수요가 늘었다. 시장 상황에 따라 파도를 타는 원료 수급과 제품 판매의 불안정성도 영세업계 중심으로 알아서 질서를 꾸려온 재활용업계의 오랜 고민거리다.

이런 고민, 아는지 모르는지 깨끗이 씻고 갈린 페트 조각은 새초롬히 투명·푸른색(초록색과 하늘색)·갈색으로 분류돼 재활용 공장 마당에 다시 놓였다. 투명은 가장 좋은 제품이다. 페트병으로의 재탄생까지 가능하다. 푸른색, 갈색 등은 낮은 품질이다. 충전재용 단섬유 등을 생산한다.

재생 단섬유 공장: 정부는 모르는 울룩불룩 솜뭉치

지금까지 살아남은 페트 조각은 이제 240㎞ 건너 경북 의성 프린스 공장 앞마당에 놓였다. 곧 단섬유가 된다. 녹을지언정 사라지지 않는 플라스틱의 속성 덕분이다. 페트 조각을 녹여 기계에서 국수 뽑듯 실을 뽑아낸다. 서서히 온도를 낮춰 끊어지는 것을 막는다. 서로 엮고, 푹신하게 만들기 위해 ‘파마’(정말 이렇게 부른다)를 하는 등 수차례 괴롭힌다. 그러고 나면 구불구불한 섬유가 약 50㎝ 너비로 줄줄 나온다. 단섬유다. 장섬유처럼 옷을 만들지는 못해도 이불 속에도, 자동차 내장재에도, 인형 솜에도, 패딩 옷 속에도, 쿠션에도 들어간다. 충전재로 널리 쓴다.

역사가 꽤 길다. 1980년대 초반 고유가(2차 석유파동)로 석유에서 뽑는 인공섬유 가격이 비싸지자 대구 섬유공장에서 나오는 자투리천 같은 폐섬유를 가져다가 재생섬유를 만들었다. 섬유공장이 국외로 옮겨가고 원재료 자리를 국내에서 늘어난 페트병이 채웠다. 언론 보도에 나오는 ‘옷이 되는 페트병’ 같은 건 아직 반짝 이벤트에 가깝다. 대부분은 단섬유 형태의 충전재로 다시 세상에 나온다. 조승형 프린스 대표가 말한다. “잘 모르셨죠? 정부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 업계의 존재 자체를.” 현재 페트병 재활용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데도 이렇다 할 재활용 정책에 포함되지 않아, 2021년 7월 프린스 같은 회사 40개가 모여 ‘한국재생화이버협회’를 만들었다.

섬유가 된 페트 조각은 누런 봉지에 쌓아 끈으로 묶여 울룩불룩 귀여운 솜뭉치가 됐다. GRS(글로벌 리사이클 스탠더드) 제품이라는 팻말을 단 곳에 놓였다. 재활용 제품이라는 국제인증이다. “선진국은 기업에 재활용 인증을 받은 제품을 일정 비율 섞어 생산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어요.” 유럽연합(EU)은 2025년까지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에 재생플라스틱 함량을 30% 이상 쓰도록 법제화했다. 우리나라는 2021년부터 재생원료 의무 사용에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이제 막 걸음을 뗐다. 그러다보니 재생섬유는 대부분 수출한다.

어떤 플라스틱은 마침내 살아남았다. 더러운 채 버려지고, 고된 노동을 갈아넣고, 불안정한 공급·수요에 휘청이면서도 어쨌든 살아남았다. 1950년대부터 세계에서 생산된 90억t의 플라스틱, 그 가운데 재활용된 것은 10%에 불과하다.(하인리히뵐재단, ‘플라스틱 아틀라스 2021’) 장하다. 그러나 마냥 기쁠 수 없다. 90%가 지구에 남겨져 동식물의 몸, 땅, 바다, 우주를 기나긴 시간 동안 떠돌 것이기에.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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