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표지이야기로 다룬 유기농 채소 취재를 위해 서울 성동구에서 열린 ‘농부시장 마르쉐’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소농들이 직접 키운 친환경 농산물을 파는 시장 한편에 커다란 냄비 앞을 오가는 분주한 중년 남성이 있었습니다. 충북 제천에서 직접 채소를 재배하는 ‘농부’이자 프랑스 요리 전문 ‘셰프’이기도 한 권오진씨가 손님들에게 점심을 선보이기 위해 장에 나온 거였습니다.
그가 내건 요리의 이름은 모두 생소했습니다. ‘템페 포테이토 퓌레와 토마토 쿨리’ 등 템페(콩을 발효해 만드는 인도네시아 음식)를 활용한 프랑스 요리였습니다. 일단 식사를 예약한 저는 별 기대 없이 음식을 집어 입안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프랑스 요리 문외한인 제가 먹어도 맛이 너무나 조화로운 겁니다. 특히 토마토의 산미와 당도, 짭짤한 정도가 딱 적당해 놀랐습니다. 당장 권오진씨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토마토가 이렇게 맛있죠?” 평소 요리를 잘 못해 ‘토마토파스타’ ‘토마토리소토’ ‘토마토카레’ 등 토마토가 들어간 식사를 자주 하는 저는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토마토를 기른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요리할 때마다 토마토 맛의 격차가 컸기 때문입니다.
비결은 단순했습니다. 자연의 변화에 따른 맛을 아는 것입니다. 봄가을 토마토는 싱거워 제철인 여름에 토마토를 많이 딴 다음 말려서 냉동 보관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늘 똑같은 맛을 찾는 게 이상한 거죠. 같은 나무에서 나와도 일조량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잖아요.” 그는 직접 농사지으며 작물 상태에 따라 다른 레시피를 적용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연한 그의 말에 저는 깨달음을 얻은 듯 “아!”라고 내뱉었습니다.
어떻게 자연이 늘 똑같겠습니까. 애초에 찍어낸 듯 완벽한 상품을 찾으려 한 제가 잘못이었습니다. 충북 청주에서 유기농업을 하시는 한살림 구미숙 생산자님도 비슷한 얘길 했습니다. “소비자가 바뀌어야 해요. 유기농이라도 늘 잘생긴 걸 최고로 치잖아요. 자연은 그게 안 되는 거잖아요.” 자연을 통제하려면 인위적 조치가 필요합니다. 농약, 화학비료, 제초제 같은 것들 말입니다. 항상 똑같진 않더라도 내 몸에도, 지구에도 더 좋은 방식이 있습니다. 권오진씨처럼 ‘맛’까지 챙기면서요.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넘어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이야기입니다.
‘있는 놈이나 한다.’ 기사가 나간 뒤 댓글 반응이었습니다. 저 역시 늘 유기농 대신 가장 싼 채소를 찾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저녁 문 닫을 시간이 가까워 장을 보러 가니, 유기농 쌈채소 할인 가격이 일반 쌈채소보다 저렴했습니다. 달달한 시금치된장국에 유기농 쌈채소로 한 끼 때웠습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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