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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후보자는 ‘어륀지’ 할까

등록 2022-04-19 01:59 수정 2022-04-1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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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1기 내각’ 구성이 4월14일로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를 시작으로 18개 부처 장관 인선을 차례로 발표했다. 윤석열의 첫 번째 사람들은 ‘육영서’다. 60대 남성(육), 영남 출신(영), 서울대 졸업(서)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그다지 신선할 것도, 흥미로울 것도 없었다. 4월13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한 ‘깜짝’ 발표마저 없었다면 말이다.

그만큼 한동훈 후보자 지명은 전격적이고 인상적이었다. ‘검-언 유착’과 ‘검찰 고발 사주’ 의혹에 연루된 최측근을 법무부 장관에 앉힌 것도 놀라웠지만, 이날 발표의 클라이맥스는 따로 있었다.

한 후보자 지명이 ‘파격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윤 당선자는 이렇게 답했다. “(한 후보자가)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다양한 국제업무 경험도 가지고 있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사법제도를 겸비해나가는 데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아, 정말 진심이었을까. ‘유창한 영어 실력’을 법무부 장관에 적합한 역량 또는 자격이라고 생각하다니, 놀랍다. 다음날 “영어를 잘하는 것과 법무부 장관 업무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 않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배현진 당선자 대변인이 “법무부가 우리 국가에 있는 부처로서만 고여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한 내용에 비춰보면, 정말 진심이었나보다. 진심으로, 놀랍다. 다음부터 장관 후보자 자격 요건으로 토플 시험 점수라도 추가해야 하나. 다른 부처는 됐고(!), 글로벌 스탠더드는 법무부만 중요하다는 것인가.

강한 데자뷔를 느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강조하다니. ‘어륀지’ 논란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시절인 2008년 1월,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영어 공교육 관련 공청회에서 “영어 표기법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원어민처럼 발음하기 어렵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 가서 ‘오렌지’(ㄹ을 영어 l 발음으로)를 달라고 했더니 아무도 못 알아들어서 ‘어륀지’(최대한 혀를 굴려서 ㄹ을 영어 r 발음으로)라고 하니 “아, 어륀지!” 이러면서 알아듣더라는 설명이 덧붙었다. 때아닌 ‘어륀지’ 해프닝은 영어 공용어 논쟁으로까지 번졌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핵심 인맥이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이었다면, 14년 뒤인 지금은 ‘육영서’(60대 남성·영남·서울대 출신), 정확히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검찰 출신’이 중심이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와 장관 후보자 등 19명 가운데 서울대 법대 출신은 5명이다. 이 가운데 3명(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권영세 통일부 장관 후보자·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이 검찰 출신이다. 검찰을 대통령 친위부대로 삼거나, 아예 나라를 검찰공화국으로 만들려는 수순이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중에서도 한동훈 후보자 지명은 검찰 직할통치, 검찰 수사권 폐지 뒤 현 정부 인사들에 대한 상설특검 가능성, 나아가 5년 뒤 대선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었을 테다.

이로써 더불어민주당이 검찰의 수사-기소권을 분리하는 법안을 서둘러 처리하려는 움직임을 부추기는 꼴이 됐다. 검찰을 둘러싼 여야의 ‘강 대 강’ 대치 정국의 꼬리가 길어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했을 때 그랬듯이, 다시 검찰이 드리운 그림자가 다른 모든 이슈를 집어삼킬 것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다시, ‘기승전 검찰’이다. 김규원 선임기자와 김선식 기자가 한동훈 후보자 지명의 배경, 민주당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강행 움직임 등을 짚었다. 방준호 기자는 장관 후보자를 포함해 대통령직인수위 요직에 포진한 인사들의 저서, 논문 등을 분석해 윤석열 정부의 머릿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들여다봤다.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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