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꿈이 만났습니다. 제1392호 표지이야기 ‘주섬주섬 해적단의 폐교 습격 사건’을 이끈 스물다섯 이찬슬은 전남 신안군 안좌도에서 꿈을 꿉니다. 멸종위기 야생동물만큼이나 척박한 현실에 놓인 외딴 섬마을에서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를 사람과 문화를 지키려고 합니다. 청년도 살고 섬도 사는 방법을 모색합니다. 섬이 고향인 예순여섯 박우량 신안군수는 섬사람이 자랑스러워하는 섬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중앙정부도 ‘지방소멸’과 ‘인구감소’ 문제에 발 벗고 나서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오래된 꿈을 다시 꿉니다. 같은 꿈이라지만 온도차는 있습니다. 군청과 정부는 청년과 지역을 지원하지만, 청년은 현재의 인생을 바칩니다.
청년 ‘해적단’은 안온한 현재 대신 불안한 미래를 택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신안 안좌도에서 청년마을 만들기에 참여한 송승호(27)는 “미래의 불안감보다 현재의 답답함이 컸다. 뭐든 벗어던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윤재천(22)은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보는 순간 현재의 가치가 파괴된다”며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거란 상상이 현재를 부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이찬슬은 불안감을 자양분으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 “난 불안하므로 내 활동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최선을 다한다.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언제든 쫓겨날 준비가 돼 있다.” 청년들이 위험부담을 짊어지고 도전하는 모습에 박우량 군수도 감복한 모양입니다. “정부 보조금 보고 뛰어든 청년들 아닐까”란 의구심은 어느새 “꼭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전폭적인 신뢰로 변했답니다.
청년들이 스스로 호명하는 ‘해적단’은 미사여구가 아닙니다. 현실의 룰을 거부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이찬슬은 “대부분 사람들은 돈과 이미지 같은 외부적인 제약에 자신을 가둔다”며 “하고 싶은 일과 가능성을 꿈꾸면서도 정작 중요한 가치를 잊어버리는 이유”라고 말합니다. 그는 “청년을 ‘엔(n)포세대’라 부르는 차가운 현실에서 뜨거운 상징이 되고 싶다”고 합니다. 수도권과 대도시로의 획일적인 인구이동과 편협한 가치 평가를 거슬러 바다 한가운데 섬마을에 깃발을 꽂은 이유입니다.
‘청년이 미래다!’ ‘지역이 미래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 또다시 절박하게 외칩니다. 청년과 지역은 미래이기 전에 현재입니다. 소멸 위기의 땅으로 간 20대 청년들은 현재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왜 대도시로 안 가고 섬으로 가냐’ ‘청년마을 같은 곳에 누가 가냐’는 비아냥거림을 등지고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현실은 쓰레기 더미로 가득한 마을 창고를 치우고, ‘귀신 나오는’ 관사에서 퇴마사를 자처하며, 폐교를 무단 점거해 지역과 청년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모험과 고난의 연속일지라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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