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누구나 은둔할 수 있지만, 누구나 도움받을 수 없는

등록 2021-12-09 14:58 수정 2021-12-10 02:04

청년들에게는 은둔 경험이 꽤 흔한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교 새내기이던 2014년에 일주일 동안 자취방에서 나오지 않았던 적이 있습니다. 입시에 실패한 뒤 자신을 실패자라고 규정했습니다. <단비뉴스> 취재팀의 다른 팀원들도 짧게는 일주일부터 길게는 두 달까지 은둔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입시, 인간관계, 취업 등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실패가 원인이었습니다.

누리꾼들도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인터넷 기사에 댓글을 단 누리꾼 가운데는 ‘나네…’(toon**** )라는 짧고 씁쓸한 글을 올린 이도 있었고, ‘나도 저 생활(은둔생활) 20대 초반 해본 입장에서 38살 지금 생각해보면 상담이 필요한 시기였다’(your****)며 자신의 은둔생활을 회고한 이도 있었습니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과도한 입시경쟁, 취업난까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발생한 폭력과 좌절 속에서 상처받은 이들이 은둔 청년이었던 겁니다.

상처를 안고 있는 이들은 자그마한 실패에도 크게 좌절합니다. 취재팀이 만난 은둔 청년들은 외출하고, 아르바이트하고, 구직활동을 하며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일상에서 마주한 작은 실패에 좌절하고 다시 은둔생활로 돌아갔습니다. 무너지는 이들을 받쳐줄 제도는 없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라는 용어가 학계에 보고된 지 20여 년 지났지만, 여전히 정부 차원의 전수조사조차 없습니다. 공공 지원기관도 없어 은둔 청년들은 소수의 민간기관에 의존하는 상황입니다. 그마저도 수도권에 집중돼 있습니다.

상황은 더욱 악화하고 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를 위한 합숙시설을 운영하는 ‘K2 인터내셔널 코리아’(이하 K2)가 2021년 12월 재정난 때문에 폐업하게 됐습니다. 그나마 은둔 청년들이 기댈 수 있었던 지원시설이 사라졌습니다. 이 공백을 채우는 속도는 필요한 만큼 빠르지 않습니다. 광주광역시가 은둔형 외톨이 지원조례를 만든 이후 전남, 부산에서 조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K2처럼 은둔 청년이 머물 수 있는 합숙시설을 도입한 곳은 없었습니다.

은둔 청년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K2 시설에 거주하는 은둔 청년들이 주도해 새로운 지원기관을 만들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응원하면서도 걱정됩니다. 은둔 청년들의 노력이 결실을 봐 지원기관이 만들어진대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우려됩니다. 이들의 노력이 계속되도록 지원제도가 절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단비뉴스> 취재팀이 <한겨레21> 지면에 보도한 이번 기사가 은둔 청년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강원 <단비뉴스> 기자 fhrmdldls@gmail.com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