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2020년 겨울, 경기도 과천의 한 비닐하우스촌을 방문했을 때도 그랬다. 1980년대 도시재개발로 인해 ‘쫓겨난 사람들’이 이후 30년 동안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뒤쫓고 있었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쫓겨나, 관악구 봉천동을 거쳐, 경기도 과천 비닐하우스촌에 23년째 눌러앉은 이춘숙(가명)씨를 만나러 간 길이었다. 검은색 비닐하우스 수백 채가 줄줄이 머리를 맞댄 채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마을을 돌아다니다보니 기이한 광경이 눈에 띄었다. 골목 어귀마다 비싼 수입차 여러 대가 서 있었다. 재개발을 노리고 비닐하우스촌에 ‘알박기’ 하러 들어온 외지인들이 끌고 온 차였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새 비닐을 씌워 하우스를 짓는 작업도 한창이었다. 사다리에 올라간 인부들이 비닐하우스 앞에 빨강, 노랑 화사한 간판을 달고 있었다. ○○화원, □□화원. 비닐하우스 안에는 파릇파릇한 식물을 심어놨다. “정말 투기꾼 같지 않은 투기꾼들이 몰려와요. 화원을 했다고 주장하면 나중에 재개발돼서 상가 분양받는 데 유리하거든요. 이런 비닐하우스를 여러 채 모아서 중간 투기꾼들한테 주기도 해요.” 세상 물정 모르는 기자에게 이춘숙씨가 슬쩍 귀띔해줬다.
알고 보니 여기서 이러시는 분이 많았다. 나만 몰랐던 ‘부동산 게임’의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 올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행태를 보고 나서야 뒤늦게 알았다. 보상받을 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용버들 묘목을 잔뜩 심고, 비닐하우스에서 닭과 오리까지 키우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삶의 벼랑 끝에서 ‘돌고 돌아’ 선택의 여지 없이 비닐하우스에 터 잡고 사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부동산 게임’에서 좀더 많은 판돈을 쓸어가기 위해 비닐하우스에 베팅하는 사람, 비닐하우스를 지어서 집처럼 파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기꺼이 부동산 게임에 참가한 그들에게는 땅도 집도 어디까지나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에서는 좀더 큰 판의 ‘부동산 게임’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천만원, 수억원이 아니라 수천억원의 ‘부동산 대박’을 꿈꾸며 게임을 설계하고 참가한 이들의 실체가 하나둘 드러나는 중이다. 부동산 개발 시행사인 화천대유에서 일하다가 퇴직금으로 50억원을 받았다는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 아들은 “(입사 시점에) 화천대유는 모든 세팅이 끝나 있었다. 저는 너무나 치밀하게 설계된 오징어 게임 속 ‘말’일 뿐”이라고 했지만, 그런 판돈을 쥘 수 있는 게임에 참가할 자격을 얻는 ‘말’은 선택받은 소수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장동 게이트’의 무대가 된 경기도 성남은 1970년대 서울 무허가 건물에서 살다가 ‘쫓겨난 사람들’의 정착지였다. 서울시는 1968년 경기도 광주군(이후에 성남시로 바뀜) 350만 평에 철거민 정착촌 ‘광주대단지’를 만들고, 철거민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성남 산동네를 사람들은 별이 보인다고 ‘별나라’라고 불렀다. 전기, 수도, 도로조차 갖춰지지 않은 허허벌판에 버려진 이들은 1971년 정부가 분양 땅값을 평당 2천원에서 1만6천원으로 대폭 올리자 ‘무상 분양’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해방 이후 도시빈민의 첫 투쟁이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에서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 끝에 최종 승자가 받는 상금은 456억원이다. 1971년 ‘부동산 게임’의 가장 밑바닥에 있던 성남 도시빈민이 목숨을 걸고 싸우며 요구한 것은 ‘분양 땅값 평당 1500원 이하 인하’였다. 그로부터 50년 뒤인 2021년 성남 대장동 민관 공동개발사업에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에 베팅한 투자자들은 수천억원대의 개발이익을 챙겼다. 그 과정에서 공무원, 법조인, 부동산 개발업자 등 ‘토건 카르텔’은 게임의 ‘말’이 아니라 ‘설계자’였다. 이 게임판을 움직인 진짜 배후는 누구인가.
‘대장동 게이트’에서는 이재명 경기지사, ‘검찰 고발 사주 게이트’에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게임의 배후라며 정치 공세가 연일 거세지는 분위기다. 엄지원·고한솔 기자가 이 두 게이트의 법적, 정치적 전망을 짚어봤다. 김선식 기자는 과거에도 대선 때마다 반복된 권력형 스캔들에서 유력 대선 주자들이 어떻게 살아남았고, 검찰은 어떻게 이들에게 면죄부를 줬는지를 돌아봤다. 이정규 기자는 또 다른 ‘대장동’이 될지 모를 동해시 개발 현장을 찾았다. 대장동과 고발 사주, 이 두 게임(혹은 게이트)에서 칼자루를 쥔 것은 또다시 검찰 등 수사기관이다. 별별 일들이 벌어지는 별나라에서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것은 결국 ‘돌고 돌아’ 또 그들이다.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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