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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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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봄

등록 2021-09-04 10:36 수정 2021-09-06 01:58
1379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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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 저희 노조 내부 논의가 마무리되고 있어 곧 교섭 진행했던 여의도 (영등포구) 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서 (교섭) 결과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2021년 9월2일 새벽 1시3분 <한겨레> 기자들이 모여 있는 채팅방에 글이 올라왔습니다. 총파업을 6시간 앞두고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과 정부가 마라톤협상 끝에 극적으로 협상을 타결하려는 분위기가 있다고 현장에 있는 기자가 전해온 것입니다. 신문사에서 야근하는 기자들은 온라인으로 속보 기사를 내보내고 신문 지면을 고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새벽 1시면 신문 제작이 마무리되는데 연장근무에 들어갔습니다. 보건의료노조 나순자 위원장과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날 새벽 2시 넘어 공동 브리핑을 열어 총파업을 철회하기로 했다고 밝힐 때까지 채팅방에는 현장 상황을 알리는 메시지가 이어졌습니다.

<한겨레> 뉴스룸은 실시간 상황을 점검하느라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일상을 기자들이 여전히 살고 있었습니다. 마감날인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어김없이 밤샘 노동을 해야 하지만 다른 날들은 대체로 평온한 <한겨레21> 뉴스룸과는 사뭇 다릅니다. 다이내믹 코리아의 축소판처럼 <한겨레> 뉴스룸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동료들과 마음을 나누는 게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2.

2010년 9월 이직해 <한겨레> 뉴스룸으로 출근할 때 고개를 숙인 채 엘리베이터를 타곤 했습니다. 낯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면 인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한겨레>를 많이 읽은 저에겐 이름도 얼굴도 익숙한 기자라서 웃으며 인사했는데, 그는 ‘누구지’라는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봐서 민망할 때가 있었습니다. 반대로 첫날 부장의 손에 이끌려서 뉴스룸을 돌아다니며 인사했지만 얼굴은 기억할 수 없어 그냥 지나쳤더니 인사성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성격유형검사 MBTI(16개 유형)에서 ENFP(재기발랄한 활동가)로 분류되는 제가 부끄럽고 기가 죽어서 지내던 ‘쭈그리 시절’이었습니다.

봄은 2012년 4월 <한겨레21> 뉴스룸으로 옮기면서 찾아왔습니다. 15명 안팎의 기자들이 일주일 내내 밥 먹고 술 마시고, 때로 일하며 지내던 4년은 아침에 눈 뜨는 게 설레는 시간이었습니다. 동료들과 마음을 나누니까 무모한 도전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2014년 세월호 유가족과 경기도 안산 단원고에서 전남 진도 팽목항까지 800㎞를 38일간 걷고, 2015년 세월호 기록 수만 장을 읽으며 ‘지워지고 사라지고 은폐당한’ 진실을 10개월간 찾아헤맨 것도 동료들의 신뢰와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추억이 가득한 <한겨레21> 뉴스룸으로 2020년 4월 돌아왔습니다. 제1307호 첫 ‘만리재에서’를 쓰며 기사와 편집 전체를 아우르는 편집장의 역할을 맡아 두려움이 몰려왔지만 그래도 두근두근했습니다. “경험과 지혜를, 무엇보다 마음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며 지난 1년6개월을 달렸습니다. 그리고, 제1379호 마지막 ‘만리재에서’를 쓰며 뉴스룸을 떠납니다.

아쉬움이 짙습니다. 한 주제로 만드는 특별한 잡지인 통권호를 더 만들지 못해서도, 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 ‘너머n’ 같은 탐사보도를 더 기획하지 못해서도 아닙니다. 눈 뜨는 게 설레는 아침이 더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씩씩하게 가겠습니다. 봄이 다시 돌아올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고맙고, 고맙습니다.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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