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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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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름다운 소멸위기 마을

등록 2021-07-09 19:08 수정 2021-07-10 05:50
* <한겨레21>1370호 표지 이야기 ‘온 마을이 세 아이를 키웁니다’의 취재 후기 입니다.

* <한겨레21>1370호 표지 이야기 ‘온 마을이 세 아이를 키웁니다’의 취재 후기 입니다.

전국 방방곡곡, 특히 시골 돌아다니길 좋아합니다. 사주 보는 친구가 역마살이 좀 있다고 했습니다. 마주하는 풍경은 저마다 다른 멋이 있어 개별적인 감동을 자아냅니다. 감동했다면? 사진 찍어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보낼 수밖에요.(‘한사랑산악회’ 아저씨 같은 거 압니다.) “뭐, 그냥 강이네” “뭐, 그냥 산이네” 반응하면 화가 납니다. 다르다고! 특별하다고!

전북 완주군 동상면은 가봤던 시골 가운데서도 손꼽히게 아름답습니다. 다만 소멸위기 지역으로 알고 갔습니다. 기자는 이런저런 세상사를 추상화하고 공통점을 묶어서 규정하는 일을 주로 합니다.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상당히 진행됐다’ 딱 그 정도면 충분할 텐데, 덧입는 이미지도 규정합니다. 소멸위기 지역이라면? 침체, 우울, 남루… 뭐 이런 것들쯤 될 테지요. 아름다운 산촌 풍경에 무장해제되려는 마음을 억누르고, 그 익숙한 소멸 마을 이미지를 찾아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합니다. 결과는? 실패입니다. 만난 사람들 탓입니다. 사흘 내내 동상면의 유쾌 발랄만 느끼고 왔습니다. 돌아오는 날 “재밌었는데, 기사는…(못 쓰겠는데요, 의 줄임말)”이라고 (팀장인) 김선식 기자에게 보고하고 말았습니다.

밤티마을 박영환·박지현씨 부부는 마주 앉자마자 “기자님 큰일 났어요. 우리 정말 말이 많아서요”라며, 정말 말을 많이 하셨습니다. 동상주조장 김호성씨는 요즘 몸이 안 좋았던 얘기를 한참 하시고선, 어느새 용맹하게 저수지 옆 수풀을 헤집으며 수몰 마을의 흔적을 알려줬습니다. 마을 주민만 보면 반가워서 아이처럼 뛰어대던 박병윤 면장님은 같이 위봉폭포(동상면의 명소입니다)를 볼 때 갑자기 말수가 줄었는데요. ‘왜 이러시나…’ 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슈와아아~/ 쉬이이익/ 쭈루루루/ 쑤르쑤르쑤르르르/ 찍찍찍찍’(메시지) “?”(내 표정) “폭포 소리. 가만히 들어보면 참 많은 소리가 있어요.”(박 면장)

가만히 들어보면, 참 많은 이야기가 있는 동네입니다. “뭐, 그냥 소멸 마을이네” 말하고 말아선 안 될. 시간, 자연, 사람, 사건이 얽힌 시골 마을 곳곳이 특별한 건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소멸위기는 그 특별함이 흐릿해진다는 의미입니다. 누구보다 안타까운 건 동네 사람들입니다. 분주하게 이런저런 일을 벌입니다. 마을을 살리겠다는 열정! 열정! 열정!을 보며 “대체 왜 이렇게까지?”라고 취재 초반 물어댔습니다. 부동산 가격이나 내 편의와 무관하게 동네를 생각한 일이 별로 없는 도시 사람 눈에 그 열의는 무척 의아해 보였거든요. 어느 순간 관뒀습니다. 왠지 그냥 알 것, 같아서요.

서울로 돌아왔고 다시 서울의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7월7일 아침 8시30분쯤, 몽롱하게 눈이 풀린 상태로 취재를 나가는데 밤티마을 박영환씨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 기사 PDF로 받아볼 수 있나요? 이번에 동네 사람들과 지원하려는 사업이랑 내용이 딱 맞아서, 신청할 때 첨부하고 싶어요.” 완주군에서 하는 ‘우리 마을 생활실험’ 사업에 ‘동상면에 아이를 더 많이 들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겠다’는 내용을 담아 신청서를 낸답니다. 무엇보다 마감시한 임박이랍니다! 또 어느새 일을 벌이셨네요. 오늘도, 아름다운 소멸위기 마을 동상면은 북적북적 소란한 모양입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이어진 기사 - 온 마을이 세 아이를 키웁니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5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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