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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시 짓는 ‘소멸 마을’

만리재에서
등록 2021-07-07 03:39 수정 2021-07-27 07:19
1370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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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 된 얘기, 그래 봐야 50~60년?”

첫 독자로서 이번호 표지이야기를 읽다가 웃음이 터졌습니다. 50~60년을 “얼마 안 된 얘기”라고 말할 수 있는, 전북 완주군 동상면 사람들의 넉넉함, 그들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서울역에서 KTX로 1시간30분이면 도착하는 전주역, 거기서 택시를 타고 30분이면 닿는 곳이지만 전국 8대 오지라고 합니다. 씨 없는 감이 유명하지만 인구는 1084명(완주군의 1.2%), 그중 10살 미만 아이는 37명뿐입니다. 20년 전에는 167명, 50년 전에는 1257명이었는데 하나둘 떠나버려 지금은 소멸 고위험 지역(소멸위험지수 0.2 미만)이 됐습니다.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2020년 5월 전국 시·군·구 지방자치단체 읍·면동 지역(3545곳) 중 1015곳(28.6%)이 소멸 고위험 지역에 속합니다. 그런데 요즘 동상면은 “좀 신난 분위기”입니다. 시인으로 등단한 박병윤 동상면장이 마을 주민 100여 명의 말을 채집하고 추려 시집 <홍시 먹고 뱉은 말이 시가 되다>(겨리)를 내놓았고 이를 언론이 앞다퉈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2020년 고향으로 부임한 박 면장이 동상면4리 17개 마을을 7개월간 주말과 휴일에 찾아다니며 구술을 받은 결과물로 133편의 (구술) 시가 탄생했습니다. 이 시집에는 101살 백성례 할머니도, 5살 박채언 어린이도 지은이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영감 산자락에 묻은 지 수년 지나/ 백 살에 초승달 허리 이마 주름 뒤덮는데/ 왜 어찌 날 안 데려가요이, 제발 후딱 데려가소, 영감”(‘영감 땡감’, 백성례)

“우리 집 강아지 미오는/ 안아달라고 멍멍멍/ 우리 집 강아지 딸기는/ 안아달라고 월월월”(‘강아지’, 박채언)

우리는 시를 짓는 ‘소멸 마을’이 궁금해졌습니다. 2박3일간 머물며 시인 면장뿐만 아니라 생태학습장(꿈나무 체험관찰학습장)을 운영하는 가족도 만났습니다. 2018년 이웃도시 전주에서 내려온 박영환·박지현 가족은 세 아이와 함께 오리, 꿩, 금계 같은 조류를 키웁니다. “하루에 네다섯 시간밖에 못 자”면서 마을 예술·인문학 아카데미도 준비합니다.

그들보다 2년 앞선 2016년, 연석산미술관이 들어섰습니다. 중학교 교과서에도 그림이 실린 유명 화가 박인현 관장이 젊은 작가들과 머물며 마을 주민의 그림을 전시합니다. 동상면의 유일한 초등학교인 동상초에는 농촌유학 온 아이들이 15명이나 됩니다. “전북에서 최고로 좋은 (혁신)학교”를 다니려고 아이들이 임진희 센터장이 운영하는 열린마을 농촌유학 센터에서 먹고 자고 생활합니다.

소멸 위험 마을이라지만 마을 사람들의 삶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다채로웠습니다. 다만 또래가 없는 점이 아쉽다고 했습니다. 정부가 귀촌 지원을 많이 하지만 농사짓는 일에 쏠려 있어, 산골 마을에는 혜택이 많지 않답니다. “여기 살면서 재택근무를 하고 싶은 젊은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저희처럼 교육사업을 할 수도 있을 텐데. 다양한 사람들한테 귀촌 지원이 많으면 동네도 재밌어질 거예요.” 박영환씨가 말합니다.

앞으로는 달라질 듯합니다. 지방소멸에 대처하려는 행정 정책이 속도를 내고 있으니까요. 행정안전부는 2021년 사상 처음으로 ‘인구 감소 지역’을 고시하고 청년들이 소멸 위험 지역에 정착하도록 적극 지원합니다. 위험하지만 위험하지만은 않은 그곳에 많은 사람이 교육·체험·창업·거주 공간을 꾸렸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한번 실험을 해볼 작정입니다.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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