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기대, 실망, 다시 기대, 분노, 끝내 냉소. 취재를 시작하며 세상을 둘러싼 청년의 감정을 헤아립니다. 실은 밀레니얼 세대에 드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떠올리다가, 문득 이 모든 단어가 ‘반응’을 이르는 단어임을 깨달았어요. 그러니 다시 슬픔. 돌아보면 나는 세상 앞에 대개 반응으로 존재했습니다. 세상의 모습은 정해져 있고, 정하는 누군가가 일단 내가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고분고분 순응하다가 (주로 온라인에서) 돌연 분노한 끝에 체념하는 일에 익숙했습니다. 늘 이건 아닌 것 같았지만, 그래서 원하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우물쭈물했습니다. 나도 한 번쯤 반응이 아닌 작용으로 존재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21세기 한국은 명료하게 정해진 해야 할 것(즉, 하지 않으면 낙오될 것)의 목록으로 가득해 보였고, ‘투 두 리스트’를 지워가며 그냥, 살았습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이하 직함 생략)라면 어쩌면 무언가 해낼지도 몰라. 의구심이 없지 않았는데 막상 당선 연설을 들으니 기대감이 조금 움트더군요. 그 쟁쟁한 야당 정치인들을 한순간 초라하게 만드는 반짝임이라니요. 하지만 ‘기대’ 또한 아직 반응을 이르는 단어일 뿐, 그래서 무엇을 하고 싶지, 묻는다면? 제1368호 표지이야기 ‘청년 ㄱ과 이준석’은 그걸 찾고 검토해보자고 시작한 기사입니다.
시작부터 막혔습니다. 함께 기사 쓰는 박다해 기자가 말했습니다. “청년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건 정말 안 될 것 같아.” 주말 사이 책들을 뒤적이며 같은 생각을 했던 터입니다. 청년 저마다 처지는 다르고, 바람의 방향과 강도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나와 달리) 반응이 아닌 작용으로 존재하는 청년도 많습니다. 젠더를, 생태를, 평등을, 자유를 자기 가치로 끌어안은 청년, 능동적으로 연대를 구하는 청년, 그리하여 모두가 좀더 행복한 세상을 명확히 그리는 (굳이 따지자면) 청년에 속한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조심해서, 함부로 규정하지 않으며’라고, 그래서 기사를 쓰기 전 첫머리에 적고 다짐했어요. (다짐은 늘 부끄러워, 물론 남들 보기 전에 지웠답니다.) 자세히 보면 기사의 많은 문장이 (다소 어색한) 피동으로 맺습니다. 기사의 주인공 삼은 청년 ㄱ이 정말 청년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한테 2000년대 내내 그렇다고 여겨졌고 그렇게 규정된 청년임을 명확히 하고 싶었습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바로 옆자리 누군가와 다투는 청년, 그러느라 함께여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청년, 끝내 “세상은 정글”이라는 이준석의 말에 동의해버린 청년 ㄱ이 진짜 모든 청년일 리 없습니다. 다만 이준석 현상 이후 더 많은 정치인과 언론이 청년 ㄱ만 호명하는 상황은 걱정스럽습니다. 그렇게 과장되게 ‘불린’ 청년이 이 모든 고통의 원인, 불평등의 주요 행위자인 기업과 이를 완화해야 할 복지국가를 지우는 담론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전문가의 설명에 이르자 슬픔은 한층 더합니다.
상황은 어떻게 이어질까요? 알 수 없지만, ‘다 싫으니 무작위’를 넘어 자기가 꿈꾸는 세계를 명료히 말하고 해야 할 일을 짚어내는 진짜 청년 정치인이 언젠가 꼭 빛을 발할 거라고 순진하게 믿기로 합니다. 그리고 나 또한, 지금 우리 시대에 대한 반응이 아닌 작용으로 있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려 합니다. 아무튼, 이대로는 안 되니까요.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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