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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코로나19와의 사투, 내일은 모릅니다

등록 2021-01-04 00:06 수정 2021-01-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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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의료 대응의 최전선을 밀착 취재하는 르포 기사를 쓰겠다고 기획할 때 걱정이 앞섰습니다. 1년 가까이 보호복을 입고 매일 8시간씩 환자를 돌보느라 지쳐버린 의료진에게 불편을 끼치는 일일 테니까요.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천 명 안팎을 기록하면서 위중한 환자도, 사망자도 가파르게 늘어나는 엄중한 시기에 그 현장을 누군가는 기록해야 하는데 고민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입을 닫고 눈과 귀로 취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질문은 줄이고 현장의 움직임과 소리, 분위기에 주파수를 맞췄습니다.

2020년 12월25일 아침 7시부터 12월27일 아침 7시까지 48시간. 황예랑·박다해·방준호 취재기자와 박승화 사진기자가 함께, 때론 따로 코로나19 중환자가 가장 많이 입원(50~60명)해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에 머물렀습니다. 코로나19 중증환자를 치료하는 ‘음압격리병동’과 사망자 장례를 치르는 장례식장, 그리고 ‘의료 공백’ 위험에 놓인 외상센터 등을 살펴봤습니다. 중앙감염병병원이자 공공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이 코로나19가 퍼진 이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처음입니다.

모든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우리가 코로나19와 싸울 수 있는 것은 의료진의 헌신 덕분입니다. 부족한 병상에 맞춰 위독한 환자와 더 위독한 환자를 선택하는 일, “지금, 잘하고 계세요, 괜찮아요”라고 안심시켰던 환자가 갑자기 목숨을 잃는 일, 숨진 환자를 씻기고 유품을 주검과 함께 비닐백에 넣는 일, 그 모든 일을 중환자를 돌보는 음압병동 간호사들이 감내하고 있습니다. “그만둘 거라고 매일 밤 얘기”하면서도 이들은 책임감으로 다음날 다시 출근합니다. 살릴 수 있는 환자를 눈앞에서 놓칠까봐 오늘도 죽을힘을 다해 일합니다.

34살 장례지도사 손진희씨도 “힘들어도 어쩔 수 없으니까” 기약 없는 생활을 이어갑니다. 사망자가 발생하면 그는 ‘우주복’이라 불리는 보호복을 챙겨 입고 병동으로 향합니다. 소독 뒤 비닐백에 밀봉한 주검을 인계받아 관에 모십니다.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관을 묶고 안치실에 옮기면 더는 고인의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선 화장, 후 장례’ 원칙을 따르지만 코로나19 사망자는 화장도 다른 사망자가 다 끝난 오후 5시에야 가능합니다. 역시 감염 두려움 때문입니다. 2020년 8월 말 이후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그의 일은 나날이 불어납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코로나19 치료의 최전선일 뿐 아니라 중증외상 환자에게도 ‘최후의 보루’입니다. 교통사고, 추락 등으로 크게 다친 환자를 꺼리는 민간병원 탓에 119구급차를 타고 ‘뺑뺑’ 돌던 외상 환자들이 이곳으로 밀려 들어옵니다. 특히 미열만 있어도 다른 병원들이 거부하는 탓에 응급실은 더욱 붐빕니다. 그런데도 중앙감염병병원이니까 코로나19 환자만 치료하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그러면 국립중앙의료원에서 19년 동안 치료받고 끝내 다리를 절단한 김관중(51)씨 같은 ‘비코로나19 입원 환자들’은 불안합니다. 다른 병원으로 옮기면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20년 3월 입원 보름 만에 쫓기듯 퇴원했을 때 실제로 그랬습니다.

국립중앙의료원에서의 48시간, 우리는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온 그들 덕분에 오늘을 견뎌내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하지만 내일은 모릅니다. 헌신만으로는 지속할 수 없는 사투이니까요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표지이야기-국립중앙의료원 48시간 르포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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