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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토크] 존재하는 만큼 볼 수 있다면

등록 2020-12-06 08:15 수정 2020-12-10 01:03

지난주에는 유튜브에서 시각장애인 안내견 영상을 열심히 찾아봤습니다. 어떻게 훈련받는지, 시각장애인과 어떻게 교감하고 그를 안내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실제로 도로에서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을 마주친다면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도 함께 찾아봤고요. 한 대형마트가 훈련 중인 예비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매장 입장을 막아 논란에 휩싸였다는 소식을 접한 뒤의 일입니다.

여러 영상을 보면서 느낀 건, 여전히 장애인의 일상이 비장애인의 삶과 많이 떨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돌이켜보면 저 역시 살면서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우연히 마주한 일이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안내견을 동반하지 않은 시각장애인을 만난 경험을 포함해도 그 수가 크게 늘어나진 않습니다. 분명 같은 땅을 밟고 사는데, 사회가 이들을 ‘보이지 않아야 하는’ 존재로 살아가도록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유리된 경험은 무지와 편견을 동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1339호 표지이야기에서 다룬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판결문 분석 보고서를 읽기 전에 ‘장애인 학대’란 말을 들었을 땐, 저는 ‘신안 섬 노예’ ‘잠실야구장 노예’처럼 ‘노예’란 단어가 붙은 사건이나 ‘광주 인화학교 사건’처럼 시설 내 집단 성폭력 사건들을 떠올렸습니다. 비장애인이 가늠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학대 말입니다.

그런데 착취와 학대는 생각보다 더 찐득하게 장애인의 일상으로 파고들었더군요. 보고서와 여러 판결문을 훑고 나서야 장애인을 윽박질러 휴대전화 개통 계약을 맺게 하거나 명의를 도용해 소액결제를 유도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범죄임을 알게 됐습니다. 이들 대다수는 길을 가다가 장애를 가졌단 이유만으로 대리점 직원의 ‘타깃’이 됐습니다. 장애를 이유로 발생한 엄연한 범죄지만, 법정에서 혐의 입증도 쉽지 않고 사후 권리 구제를 받는 절차도 복잡합니다.

무엇보다 문제는 이러한 착취 행위를 ‘학대’로 보는 경우가 드물다는 겁니다. 어디 그뿐일까요. 장기간 명백하게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착취가 일어날 때도 법원은 단지 가해자가 장애인에게 숙식을 제공했다는 이유만으로 감형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장애인은 “불쌍한 사람”이란 편견과 “돌봄 과정에 폭행이 수반될 수도 있다”는 식의 무지가 폭력을 방조하는 판결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취재하면서 어려웠던 또 다른 점은 장애인의 의사능력이 법적으로 어디까지, 어떤 방법으로 인정될 수 있느냐였습니다. “지적장애인은 의사능력이 없다”는 점을 법원이 어떻게 반영하느냐에 따라 장애인의 피해를 구제할 수도, 권리를 제한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보호가 반드시 정답은 아니라는 점도, 한국 사회엔 장애인 학대 범죄 통계조차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배제하거나 차별하거나.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 두 가지만 있지 않을 겁니다. 장애인이 ‘존재하는 만큼 보이는’ 사회가 되면, 고민이 조금 덜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시각장애인 안내견 출입 거부로 촉발된 논란이 비단 ‘귀엽고 듬직한’ 개들의 사연만으로 끝나지 않길 바랍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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