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10월28일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습니다. 동영상을 통해 성접대 의혹이 불거진 뒤 수억원대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1심에서 무죄로 풀려났는데 항소심에서 어떻게 뒤집혔을까 궁금했습니다.
판결문을 읽어보니 김학의 전 차관에게 유죄를 선고한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는 검사에게 잘 보이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정도의 ‘막연한 기대감’을 넘어선 ‘구체적 기대감’이 뇌물 공여자(스폰서)에게 있었는지를 유무죄를 가르는 판단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이 기준에 따라 무죄인 사례는 진경준 전 검사장이고 유죄인 사례는 김광준 전 부장검사라고 설명했습니다.
진경준 전 검사장은 김정주 넥슨 창업주한테서 넥슨 비상장주식을 비롯해 제네시스 리스 차량, 여행경비 등 9억5천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뇌물수수)로 기소됐지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두 사람이 고등학교 시절에 만나 20년간 친구관계를 지속했고 △금품을 준 뒤 김 대표가 수사를 받았지만 그 사건에 진 전 검사장이 개입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근거로 “막연한 기대감만으로는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2008년 대한항공에 처남의 청소용역업체에 147억원대 일감을 몰아주도록 한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만 그는 2018년 징역 4년을 확정받았습니다.
반면 김광준 전 부장검사는 수사를 무마해주는 등의 대가로 10억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14년 징역 7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사건에서 유죄로 판단된 이유를 김학의 전 차관의 항소심 재판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알선수뢰죄가 성립한다고 본 이유는 김 전 부장검사가 상법 등 위반 사건 처리에 관여하는 과정에서 향후 유사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담당 검사 등에게 부탁해 사건이 잘 처리되게 해줄 것이라는 구체적 기대감이 형성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학의 전 차관 사건으로 돌아오면 그에게 2000년부터 2011년까지 5천만원 정도의 경제적 이익(차명 휴대전화, 법인카드, 상품권, 현금, 술값 등)을 제공한 건설업자 최아무개씨는 ‘구체적 기대감’이 있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습니다. 최씨는 1998년 뇌물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은 과정에서 김 전 차관의 도움을 받은 정황이 있고, 이후에도 ‘엘리트 검사’ 코스를 밟는 그에게 이익을 제공해 다시 검찰 조사를 받는 상황이 생길 경우 김 전 차관을 이용해 해결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항소심 재판부가 김 전 차관에 대해 뒤늦게라도 유죄를 선고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연한 기대감’ ‘구체적 기대감’ 같은 모호한 판단 기준을 내세워 기업인에게 돈을 받은 ‘스폰서 검사’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인정한 것은 유감입니다. 친구에게 받은 돈으로 주식을 사고 되팔아 수백억원의 차익을 얻은 제2의 진경준이 2020년에 나온다고 해도 법원은 다시 무죄를 선고할 것이라는 얘기니까요. 오랫동안 지속해서 관리해 친분이 두터운 스폰 관계일수록 뇌물죄를 비껴갈 가능성이 큰 상황입니다. 스폰서와 검사, 그 고질적 악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너무 분명하지 않나요.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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