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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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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가고 싶은 섬 이야기

등록 2020-08-08 15:48 수정 2020-08-11 10:32
1325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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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말 8초’ 여름휴가 공식이 깨진 듯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초·중·고 여름방학이 늦어진데다 기록적인 긴 장마와 폭우로 휴가철 풍경이 달라졌습니다. 멀리 떠나지 않고 집에 머무는 ‘집콕’이나 ‘스테이케이션’(Staycation)이 새 트렌드로 주목받습니다. 그래도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한겨레21>이 독자를 대신해 남해안과 닿을 듯 붙어 있는 두 섬을 다녀왔습니다. 마음 심(心)을 닮았다고 해서 지심도(경남 거제), 소의 멍에라는 뜻에서 가우도(전남 강진)라 이름 불리는 곳입니다. 지심도와 가우도에 사는 주민은 각각 30명 안팎입니다. 하지만 섬 전체를 뒤덮은 빨간 동백꽃을 보러 지심도에는 해마다 14만 명이, 강진만과 무인도를 조망하러 가우도에는 50만 명이 다녀갑니다. 관광객은 섬의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하지만 섬사람들의 삶은 평탄하지 않습니다.

2017년 국방부로부터 섬 소유권을 이전받은 거제시는 생태관광공원을 조성하겠다며 지심도 주민에게 강제이주를 요구하고 단전과 도선 운항 중단을 예고했습니다. 지난 7월29일에는 거제시청 직원 22명이 들이닥쳐 섬을 샅샅이 뒤지며 꼬투리를 찾아다녔습니다. 농어촌 민박을 운영하는 것은 합법이지만 관광객에게 막걸리와 파전을 파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1955년 스무 살 때 결혼하면서 섬에 들어온 박계아 할머니는 “평생 섬을 떠나본 적이 없는데, 인제 와서 나가라고 하면 우짜란 말”이냐고 탄식합니다.

2015년 전남도 ‘가고 싶은 섬’ 첫해 사업지로 선정돼 5년 동안 40억원을 지원받은 가우도 주민들도 고민이 있습니다. “주민 내쫓거나 소송 벌인다는 딴 섬들보다는 나을 수 있겠지만” 섬과 뭍을 잇는 출렁다리가 놓인 뒤 쓰레기가 늘어나고 하수 처리 문제가 터졌습니다. 주민들이 참여한 협동조합 카페와 빵집 등에서 수익이 생기자 배분 문제가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섬 생각하는 마음, 잘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주민들은 주민회의를 수시로 열어 지속가능한 관광자원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놓습니다.

지방자치단체는 전국 곳곳에서 의욕적으로 관광지 개발을 추진합니다.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며 도로를 닦고 모노레일을 깔고 공원을 조성합니다. 수십, 수백억원이 투입된 개발사업이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몇 명의 관광객이 몰려오는지로 가늠합니다.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오랫동안 가꿔온 주민들의 노고에는 조명을 비추지 않습니다. 강제이주 통보를 받아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지심도 주민뿐 아니라 ‘주민 주도형 개발’ 성공 사례로 손꼽히는 가우도 주민들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개발과 주민이 공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 방법을 실현할 날이 오긴 할까요.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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