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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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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장의 사진

등록 2020-02-22 16:39 수정 2020-05-03 04:29

두 장의 사진이 내 앞에 있다. 하나엔 남성 3명이, 다른 하나엔 여성 4명이 보인다.

남성 3명의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를 배경으로 2월7일 찍었다. 가운데 낯익은 의원이 마이크 앞에 있고 양옆으로 총선에 출마할 예비후보들이 섰다. 왼쪽 인물이 최근 화제다. 출마 희망지가 같은 당 의원의 지역구인 탓이다. 이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에 사진 속 후보가 공천 신청을 하자 당을 향해 “이번 총선을 조국 수호 선거로 치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그 후보는 경선을 막으려는 “저질 B급 정치 안 했으면 한다”고 의원을 향해 날을 세웠다. 치고받는 싸움판에 생략된 맥락이 많으나, 이 사진을 주목한 이유는 정작 이슈에선 벗어나 있다.

사진 속 등장인물 셋 다 변호사다. 그중 한 예비후보와 경쟁 구도에서 설전을 벌인 현역 의원 또한 남성이자 검사 출신이다. 이 의원이 거론한 인물 또한 잠시 법무부 장관을 지낸 법률가다.

출처 : 연합뉴스(위), 로이터(아래)

출처 : 연합뉴스(위), 로이터(아래)

또 다른 사진의 배경은 헬싱키다. 지난해 12월10일 새 내각의 첫 각료회의 뒤 찍은 사진 속 4명은 각각 핀란드의 총리, 교육부 장관, 재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이다. 검은색 정장을 맞춰 입은 인물들의 평범한 이 사진이 세상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들의 공통점은 30대 초·중반 여성이라는 것이다. 청년 시절부터 정당 활동을 했고, 공공기관에서 일한 경력이 짧지 않다. 넷의 이력을 하나하나 뜯어보니 누구도 법조 경력은 없다. 하나 전세계 많은 이들이 부러움의 시선으로 ‘젊은’ 여성들이 펼칠 정치에 기대를 품고 응원한다.

다시 3명의 남성 사진으로 돌아가보자. 왜 한 컷 사진 속 인물이 모두 남성 법조인일까. 이 사진을 주목한 이유다. 사진 한 장은 때론 사회를 축약해 보여준다.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을 앞두고 특정 정당에서 벌어진 일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에 불과하다고 무심코 넘길 수 있지만, 이 사진은 우리 정치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특징을 압축한다. 바로 법조 과잉이다.

지난 두어 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사건도 법조발이다. 특히 조국 사태가 그랬다.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를 떠나서, 우리는 익숙한 의제였던 공직자의 도덕성과 윤리, 교육 불평등, 검찰개혁, 진영 논리 등을 그 사건에서 다시 떠올려야 했다. 어떤 사건과 사고를 계기로 드러난 사회의 병든 지점을 진찰하고 치료하고 예방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그런데 너무 자주 법조발 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블랙홀처럼 빨려든다.

동어반복처럼 들리겠으나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회는 시민을 대표한다. 그런데 국회의원 가운데 15% 안팎이 법조인 출신이다. 대학 때 법학 전공자로 넓히면 20%가 넘는다. 정치에 꿈이 있다면 정치학과가 아닌 로스쿨에 가는 게 유리하다. 지난해 변호사 시험 합격자는 1691명이었다. 로스쿨 전환 이후 많이 늘어났지만, 그전 수십 년 동안 사법시험 합격자는 매년 300~500명이었다. 극소수인 이들은 우리 사회의 이목을 과점하고 자원을 배분할 수 있는 권력에 과다 대표되고 있다.

남성 3명의 사진 속 좌우 두 사람은 촬영 당일 입당식을 했다. 총선이 70일도 남지 않은 시점이다. 어떤 이들은 출마하기 바로 몇 달 전까지 검사복이나 법복을 입는다. 정치나 정당 활동을 해본 적 없는 게 되레 법조인들이 국회로 가는 지름길이자 보증수표가 된다. 부분적으로 한 사람씩 따져보면 정당에 부합하는 이념 지향을 갖추고 인격과 덕망이 뛰어날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들이 시민을 과잉 대표하는 ‘법조 사회’의 문제가 드러난다. 법조인이 정치를 더 잘한다고 우길 수 있지만, 익숙한 것에 대한 믿음일 뿐이다. 4명의 여성 사진을 보면서 이들이 정치를 잘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믿음만큼이나 위험하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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