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불 보듯 뻔한 고통을 무릅쓰고 성 정체성(identity)을 찾아간다. 이들은 이미 정립이 끝난 사회상(像)에 자신을 대입하려고 무던히 애써왔지만 ‘들어맞지 않음’에 수없이 좌절한 이력이 있다. 어찌해도 맞는 척하는 역할에 한계가 오면, 본연의 자신을 드러내기로 결정한다. 존재하니까 보일 수밖에 없는 그더러 사람들은 이제 ‘나대지 말라’ 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군대에 다녀온 그녀도 두려운 것</font></font>1년 전, 취재로 알게 된 그녀는 자신이 남들과는 좀 다르다는 걸 11살 무렵에 알았다. 남자애들 노는 데서는 겉돌았지만, 여자애들과 있으면 맘이 편했다. 조금 더 자랐을 땐 자신이 게이인 줄 알았다. 2차 성징으로 몸이 확연히 달라지자, 자기 몸을 견디기 힘들었다. 20살, 혼란을 안고 군에 입대했다. 제대 뒤 자신과의 투쟁을 그만 접고 싶은 마음에, 여성과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리하면 두 사람 다 얼마나 불행해질 것인가…. 거짓말은 지겹고 쓸쓸했다. 단,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20년을 거짓으로 살았으니 남은 세월은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
스스로 인지하는 성별과 사회가 정하는 지정 성별이 달라서 성별불쾌감(Gender Dysphoria)을 느끼니 성전환을 원한다는 정신과 진단(서)을 받아야, 호르몬 대체요법 등이 가능하다. 그녀는 이 진단을 받으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 그러나 그냥 트랜스젠더일 뿐이었다. 도리어 “여자야? 남자야?” ‘남자애가 여자 같아’ 대놓고 묻거나 속삭이는 소리가 아무 때고 아무 데서나 들려왔다. 몸의 변화로 대중목욕탕도 갈 수 없었고, 사람들이 자신을 괴물로 볼까봐 버스도 맘 편히 못 탔다. 하도 물어보니 대인기피증마저 생겼다. 이제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엄마도 여전히 안부 전화 끝에 “아들~ 아들” 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예상한 두려움이었다. 진짜 공포는 다른 곳에서 왔다. 그녀가 남자일 땐, 밤에 돌아다녀도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머리를 기르고 젠더 표현을 자신에게 맞게 하고부터는 집 앞까지 따라오는 사람이 생겼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밤에는 잘 안 나가게 됐고 새벽에도 불을 전부 켜놓고 자는 버릇이 생겼다. 군대도 다녀온 그녀는 남자들에게 당하지만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 공포는 달랐다. 한국이 제아무리 치안이 좋다 해도 경험하지 않으면 결코 몰랐을 일들을 여자가 되고서야 알았다. 어떤 남자들은 여자를 치마나 스타킹 혹은 화장으로만 보는 것 같았다.
여대에 합격한 그녀를 거부한 학교 안 여대생들은 “그저 여성들의 안전한 공간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라 하지만, 만약 트랜스젠더 여성의 밤길 불안을 알았다면 자신들만 안전을 위협받는다고 단정할 수 있었을까. 그녀가 반대 끝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해도 자신을 거부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학내에서 마냥 안전함을 느꼈을까.
<font size="4"><font color="#008ABD">감염병과의 공통점</font></font>손흥민 선수가 인터뷰 중에 잔기침을 하자 손흥민 혈관에 바이러스가 흐른다는 조롱성 게시물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져나갔다. 그러면 우리는 단박에 알지 않는가. 두말할 가치도 없는 혐오표현이라는 것을. 이 표현에 분노를 느꼈다면 이건 어떤가. “내 삶은 다른 사람의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무시되고 ‘반대’를 당한다. 그렇게 나는 일상을 영위할 당연함마저 빼앗겼다.” 끝내 대학 등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가 우리에게 전하는 이 말은 너무도 아프다. 코로나19 대책위원회는 감염병 방역 활동의 성패는 배제와 차별이 아니라 포용과 인권보호에 달렸다고 했다. 감염병 유행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이것이 전부이듯, 한 사람의 일상이 무참히 짓밟히는 사회에서는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
김민아 저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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