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형과 동료들이 죽은 게 내 잘못이 아니다. 좋은 데로 갔을 거다….” 4월5일 경남 창원 성산구의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실에서 만난 김현민(46·가명)씨는 숨죽인 채 한참 어깨를 들썩거렸습니다. 2017년 5월1일, 물량팀(1차 하청업체로부터 재하청을 받은 단기 일용직) 배관 작업을 했던 노동자 김씨는 경남 거제의 삼성중공업 조선소에서 함께 일하던 친형과 동료들을 잃었습니다. 그날 오후 2시52분께 800t급 골리앗 크레인(기중기)과 32t급 지브형 크레인이 충돌하면서 휴게 공간에 있던 노동자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습니다.
이후 김현민씨는 ‘가면’을 쓰고 살았습니다. 가족에게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형에게 일찍 전화했다면 형을 살릴 수 있었을까?”라는 죄책감에 김씨는 혼자 뜬눈으로 긴긴밤을 지새웠습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 쪽은 “정신질환은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어렵다. 긴 시간이 걸릴 거다”라며 김씨의 산재 신청에 부정적이었습니다. 김씨는 사고가 난 지 2년 가까이 지나고서야 근로복지공단에 다시 산재를 신청합니다. “듣고 싶은 위로의 말이 뭐냐”는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김씨의 가면은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기자도, 김씨도 한참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사고 목격 피해 트라우마는 단순히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3월22일 만난 김오성(38·가명)씨는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검은 마스크를 쓴 채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이 자꾸 날 쳐다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습니다. ‘대낮에 젊은 남자가 일도 안 하고 왜 빈둥거리며 돌아다니지?’라는 낯선 시선이 두렵다고 했습니다. 누군가 가족에게 “왜 남편이, 왜 아빠가 집에서 놀아?”라고 물어서 가족이 상처받을까 이날도 김씨는 눈만 겨우 드러낸 채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족에게도, 일터에서도, 병원에서도 이들은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김명진(38·가명)씨는 말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에겐 나는 그저 정신 나간 놈일 뿐이다.” 일터에서는 동료들이 “꾀병 아니냐”라며 빈정거렸습니다. 의사마저도 “또 산재 요양 기간을 연장하냐”라며 비난했습니다. 저 역시 이들을 만나기 전까지 왜 일터로 돌아갈 수 없었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일터나 병원에서 이들에게 던졌던 2차 가해 언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고 뒤 거제를 도망치듯 떠난 이들을 대구, 경남 창원, 울산, 인천에서 만났습니다.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이 기록한 에 담긴 11명의 이야기를 곱씹었습니다. 누군가는 ‘사고 목격 노동자’라는 표현도 이들이 겪는 고통을 담아내기에는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대신 ‘생존 피해 노동자’라는 표현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사고 목격에 따른 심리적·잠재적 외상은 최근까지도 공황장애, 불면증, 무력감 등 여러 얼굴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말해주세요. “동료들이 죽은 것은 결코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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