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IMF와 김용균

편집장의 편지
등록 2018-12-15 12:11 수정 2020-05-03 04:29

“마지막으로 F안이다. 한국은 구제금융을 받는 즉시 전격적인 노동시장 유연화에 돌입한다.”

협상의 조건들을 쏟아내던 테이블 맞은편 뱅상 카셀(IMF 총재 역)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여섯 번째 조건이었다. 김혜수(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 역)는 되묻는다. “…유연화라는 것은 대량 해고를 말하는 건가.” 뱅상을 대신해 IMF(국제통화기금) 쪽 협상 실무진이 ‘유연화’란 모호한 말로 숨겨진 조건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해고라고 한정하지 않겠다. 다만 고용 형태의 변화, 예를 들면 비정규직이나 간접고용의 확대도 포함되는 것이다. IMF는 한국의 노동시장이 좀더 활성화되기를 원한다.” IMF 총재에게 따지고 항의하고 당당하게 맞서다, 끝내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협상을 엎어라’는 김혜수의 당당함을 보면서 영화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낄지 모르겠으나, 현실은 무기력했다. ‘그들의 요구’는 모두 수용됐다.

그 결과는 현실 속 미셸 캉드쉬 IMF 총재와 임창열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이 서울 세종로에 있는 정부중앙청사에서 악수하는 장면을 담은 한 컷의 사진으로 응축된다. 외환위기를 상징하는 현대사의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1997년 12월3일 악수를 나누는 두 사람은 오른손 아래 왼손으로 뭔가를 주고받는다. 바로 ‘대기성 차관 협약을 위한 양해각서’다. 부도에 맞닥뜨린 우리나라에 급히 돈을 꿔주겠다는 증서였다. 노동자를 쉽게 자를 수 있는 노동시장의 유연화, 공공재의 영리화를 뜻하는 민영화 등이 이때 증서를 받으면서 등 떠밀려 한 약속이었다.

지난 12월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4살 김용균씨가 새벽 순찰을 돌다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졌다. 생애 첫 직장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지 채 석 달이 되지 않은 때 일어난 사고였다. 그가 다니던 회사는 공기업인 한국서부발전의 설비운전을 위탁받은 민간 업체였다. 이 회사도 한때 공기업이었으나 4년 전 민영화하면서 소수의 투자자가 돈을 모아 차린 칼리스타파워시너지 사모투자 전문회사의 손에 넘어갔다. 발전소의 설비는 서부발전 소유지만 운영은 하청업체들이 하는 이원화된 구조다. 이런 식으로 서부발전을 포함해 남동발전·중부발전·남부발전·동서발전 등 5개 발전사에서 민간 정비업체를 통해 사용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는 8천 명이 넘는다. 이는 대한민국 노동자 열 가운데 넷이 비정규직인 현실로 확장된다.

21년 전 뿌려진 ‘씨앗’이 김용균의, 수많은 ‘김용균’의 죽음을 잉태했다. 김씨가 숨지기 전 2008~2016년 서부발전 등 5개 발전 공기업에서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 가운데 92%인 37명이 간접고용 노동자였다. IMF가 이식했던 노동시장의 유연화, 민영화, 외주화는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희생과 대가를 요구했던가. 그리고 지금도 요구하고 있는가. 케이티(KT) 서울 아현지사 화재 뒤 통신 대란, 강릉선 케이티엑스(KTX) 탈선, ‘구의역 김군 사건’, 세월호 참사 등 잇따른 사고와 사회적 재난의 원인도 21년 전 ‘그들의 요구’를 떼어놓고서 얘기할 수 없다.

‘그들의 요구’는 곧 외국자본의 요구였다. 그 요구는 자본의 비용 절감, 다른 말로 수익 확대 전략의 포장술이었다. 영화 에서 김혜수는 돈 빌려주는 조건을 내거는 IMF 총재에게 공허하게 외친다. “그 어떤 국제기구라도 구제금융을 이유로 한 나라의 경제적 자율성을 침해할 권리는 없다.” 21년이 지난 이제 ‘자율성을 침해하는’ 외압들은 사라졌다. 대신 외압은 자연스레 체화됐다. 외국자본의 요구는 국내 자본의 요구이자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