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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되지 않은 땅

편집장의 편지
등록 2018-12-08 10:32 수정 2020-05-03 04:29

지금껏 남북한의 정상들은 다섯 차례 만났다. 세 번은 평양, 두 번은 비무장지대(DMZ)에서다. 서울은 한 번도 허락되지 않았다. 정상회담 장소로 평양은 되지만 서울은 어려운 걸까.

남한 정상이 북녘에 가는 건 논란이 적고 안전하지만, 북한 정상이 남녘으로 오는 건 그렇지 못하다. 남한 사람 대부분은 남녘이 북녘보다 안전한 나라로 생각할 것이다. 오랜 반공 교육의 각인 효과인지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북한은 방북하면 위험이 큰 나라란 인식이 강했다. 이를 알았는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13일 평양 백화원 접견실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용감한 방북”을 했다고 치켜세웠다. “힘든, 두려운, 무서운 길을 오셨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자도 도덕이 있고 우리는 같은 조선 민족입니다.” 김 전 위원장의 덕담에 김 전 대통령은 “나는 처음부터 겁이 없었습니다”라고 화답했다.

김 전 위원장의 ‘용감한 방남’은 없었다. 이틀 뒤 두 정상이 합의한 ‘남북공동선언’ 맨 끝에 박힌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겠다는 문장은 끝내 ‘사문화’되었다. 두 달 뒤 김 전 위원장은 남쪽 언론사 사장단과의 오찬에서 약속을 재확인하면서도 “국방위원회와 외무성이 토론 중”이라고 복선을 깔았다. 다시 한 달 뒤 임동원 국가정보원장과 김용순 노동당 비서가 고위급 특사 회담을 열고 발표한 ‘남북 공동 보도문’ 1항에 재차 가까운 시기에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못박았지만, 끝내 김 전 대통령이 김 전 위원장을 배웅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안타깝게 두 사람은 세상을 떴다.

징조는 처음부터 불길했다. 공동선언에 담기 전 서울 답방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 김 전 위원장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망설이고 있음이 분명했다고 김 전 대통령은 회고했다. 7년 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만났을 때는 서울 답방을 아예 약속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11년이 흐른 2018년 잇따라 세 번의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가까운 ‘시일 내’ 서울 답방을 약속했다. 며칠 남지 않은 연내, 김 위원장의 ‘용감한’ 서울 답방은 성사되고 무사히 치러질까.

서울에선 최근 ‘김정은 체포 특공대 모집’ 공고가 떴다. 지원 자격은 ‘주적 김정은 방한을 반대하는’ 무술 유단자다. 1천 명 모집에 복장 규정은 검정색 옷과 마스크, 선글라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천만인무죄석방본부와 대한애국당이 주도한다. 소수의 폭력적 기획에 그칠까. 문재인 대통령도 걱정이었던지 12월2일 주요 20개국(G20) 회의 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두고 북한에서 가장 신경 쓸 부분이 경호나 안전 문제 아닐까 생각한다. 그 부분은 우리가 철저하게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한 최고지도자가 평양에 갈 때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안전이, 북쪽 최고지도자가 방남할 때는 가장 큰 근심거리다. 북쪽은 통제된 공산주의 국가이고 남쪽은 다양성이 존중되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불충분하다.

서울 답방은 남한 내 반공의 잔상이다. 뒤로 밀리고 싶지 않은 이념적 전선이다. 18년 전 는 한국전쟁 등에 대한 분명한 해명과 사과를 전제로 내걸면서 김정일 전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반대했다. 이번에도 역시 앞장서 반대한다. ‘김정은을 찬양하는 세상이’ 올까 걱정이란다. 그러면서 게임하듯 정상회담 상대방의 ‘용기’를 시험하겠다는 오만의 극치도 보인다. 이 보수신문의 김대중 고문은 “김정은이 과연 자신에 비판적인 언론 논조나 반대 시위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방문할 여유와 배포와 자세가 돼 있는지를 시험하고 싶다”고 썼다.

이제는 남한 정상이 굳이 용기 없이도 북한을 가듯, 북한 정상이 서울로 답방하는 날이 언제나 올까.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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