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이름들이 눈길을 끌었다. 록펠러, 디즈니…. 미국 뉴욕주에 사는 백만장자 51명이 주지사와 주의회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 담긴 부자들의 요구는 낯설었다. “우리가 내야 할 세금을 올려라.” 아니 세금을 더 내겠다고? 기업을 이끌거나 투자가들인 이들은 세금을 더 낼 책임과 능력이 있다고 외쳤다.
증세를 자청한 이유는 자신들의 부가 공동체에 빚지고 있어서란다. 자신들에게 부를 안겨주는 기업의 성장과 안정은 제대로 교육받은 인적 자본과 다리, 철도, 터널, 도로 등 물리적 사회 인프라에 의존하고 있다 했다. 그러니 자신들이 더 내는 세금으로 여기에 투자하란 호소였다.
한 나라에 세금을 더 내겠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나라에는 세금이 너무 많다고 항의하는 이들이 있다. 10년 전 재산이 25억원으로 백만장자라 불릴 만한 강만수 전 경제부총리. 그는 2008년 인사청문회에 나와 “우리 아파트가 노무현 정부가 시작될 때보다 3배 정도가 뛰었습니다. 뛰었습니다만 저에게는 하나의 소득이 없고 오히려 종부세만 더 많이 내게 되기 때문에….” 당시 대치동에 21억원짜리 아파트를 소유한 그는 1700만원의 종부세를 냈다며 푸념했다. 이명박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였던 그는 그 뒤 자신의 뜻대로 종부세를 무력화했다. ‘셀프 감세’ 덕택에 원래 내야 할 세금은 3분의 1로 줄었다.
서울 강남에는 공동체에 부채 의식이 없는 수천, 수만의 ‘강만수’가 산다. 청문회 1년 전쯤 그가 살던 강남구 주민 6천여 명은 법을 고쳐 종부세 부담을 줄여달라는 청원서를 구의회에 보냈다. 대부분 종부세 납부자로, 비싼 집에 사는 부자들이다. ‘버블 세븐 지역’으로 퍼진 이들의 저항은 이듬해 권력이 바뀌고 현실이 되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살던 60대 어느 노인이 그즈음 보수 경제지인 에 한 말은 저항을 그럴듯하게 포장했다. “집을 팔면서 이익이 생기면 세금을 내는 것이 당연하지 않으냐. 그러나 종부세는 이익이 생기지도 않았는데 내는 불합리한 세금이다.”
몇 년 전 미국에 잠시 머물 때 방 2개짜리 아파트에 살았다. 아이들이 다니던 초등학교 바로 앞에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봐왔던 전형적인 미국 집이 있었다. 스쿨버스를 놓친 아이들을 태워다 주거나 태워 올 때마다 지나쳐서 그런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 2층짜리 단독주택이었는데, 세 들어 살기에 임대료가 너무 비싸 엄두도 내지 못한 집이다. 알아보니 차고가 두 개 딸려 있고 방은 4개였다. 집값은 지금 11억원이 조금 넘는다. 이 집을 소유했을 때 내는 보유세는 지난해 1237만원이었다. 매월 100만원씩 내는 셈이다.
비슷한 가격대의 강남 아파트에는 종부세가 붙지 않고 재산세만 1년에 59만원쯤 낸다.
교포 사이에서 미국의 강남으로 통했던 그 지역의 카운티(우리나라 시·군·구)에서 매기는 보유세는 주택 평가액(실제 매매가와 큰 차이 없음) 100달러당 1.15달러다. 여기에 타운(읍·면·동) 차원에서 걷는 부동산세가 100달러당 22.5센트 붙는다.
팔지 않고 보유만 해도 계속 내야 하는 미국 주택의 보유세 수준은 강남 집부자들이 알면 기겁할 일이다. 보유세를 매길 때 고령, 장애 등에 의한 감면 혜택과 소득세 납부시 보유세 공제 등을 고려하더라도 미국의 보유세 수준은 우리나라보다 높다.
부자라는 자신들의 계급적 정체성을 드러내놓고 인정한 뉴욕주의 백만장자들과 조세에 저항해온 강남의 아파트 부자들의 차이는 또 있다. 아파트 부자들 상당수는 자신들이 중산층이란 허위의식에 빠져 있다. 아파트 가격만 20억~30억원인 재산을 가진 이들은 아무리 봐도 부자인데 소득이나 빚을 이유로 자신을 중산층이라 여긴다. 부자가 져야 할 책임과 부담에서 도피하고 싶어서일까.
허위로부터는 벗어나는 게 맞다. 그러기 위해 강남의 아파트 부자들에게 뉴욕주 백만장자들이 쓴 편지를 일독하길 권한다. 2016년 3월21일치 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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