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를 그만둘까. 셀 수 없이 많이 한 생각이지만, 진짜 그만둘 고비는 딱 두 번 있었다. 첫 고비, 큰딸이 4살 때였다. 늦은 밤 자는 아이를 껴안고 펑펑 울었다. 수치심에 무력감에 기자를 더 할 자신이 없었다.
그날 낮, 서울중앙지검에 들렀다. 대선 2주 전이었다. “뚜렷한 증거가 없다.” 예상한 수사 결과 발표였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참담했다. 때론 혼자, 때론 동료들과 썼던 기사는 사실이 아니라는 주홍글씨가 붙었다.
법적 딱지는 8년차 기자에게 씻기 힘든 상처였다. 원죄가 있다는 생각에 더욱 힘들었다. 를 이명박이란 늪으로 끌고 왔다고 자괴했다. 그해 봄부터 에서 이명박 대선 후보의 비리를 취재하다 판이 커지면서 신문도 가세했다. 그해 여름 특별취재팀이 꾸려져 선후배 동료들과 BBK, 다스, 도곡동 땅 등 이명박을 둘러싼 의혹을 파헤쳤다.
수사 결과로 진실의 편에 서 있다는 확신마저 무너지진 않았지만, 기자로서 자긍심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어쩌면 감방에 갔을지도 모른다. 검찰은 출석을 통보해왔다. 참고인 자격이라고 했지만, 사내 자문 변호사와 협의 끝에 수사에 응하지 않기로 했다. 짜맞추기 수사에 자칫 희생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위협도 느꼈다.
그해 대선을 사흘 앞두고 나온 ‘광운대 동영상’이 없었다면 기자를 그만뒀을지 모른다. 그의 거짓을 뒷받침하는 숱한 증거를 취재해 기사로 제시했지만, 자포자기 상태에서 듣게 된 이명박의 육성만이 마지막 버틸 힘이 돼주었다. “BBK를 내가 창업했다.”
이명박은 를 상대로 50억원의 명예훼손 소송을 냈다. 답변서를 제출하느라 며칠 밤을 새웠다. 사실이 아닌 보도라며 1심에서 졌다. 포항, 고려대, 테니스로 조합되는 2심 재판부에서 는 대통령이던 이명박과 조정에 합의했다. 2010년 5월의 일이었다. 이명박은 언론의 입에 그토록 원하던 자물쇠를 채웠다. 는 1면에 사과문 성격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기에 이를 알려드립니다. 이 보도와 관련해 결과적으로 원고(이명박)에게 피해를 준 사실에 대해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합니다”고 썼다.
그때부터 ‘BBK 트라우마’가 생겼다. 다스, 도곡동 땅, BBK는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몇 상자나 되는 자료는 집 구석에 깊숙이 처박아놨다. ‘이명박 당선’을 ‘대선 패배’라 하는 사람들은 ‘알아먹지도 못할 그놈의 BBK에 올인한 탓’이라고, ‘우리’를 쏘아붙이는 듯했다. 세상의 사실적, 정치적 판단은 기자를 움츠러들게 했다. 사실의 합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주문으로 버텼다.
지난 10월6일 법원은 일흔일곱 살 이명박에게 징역 15년형을 선고했다. 벌금 130억원에 추징금 약 83억원이 더해졌다. 그리고 ‘다스와 도곡동 땅은 이명박의 것’이라고 못 박았다. 새로운 사실이 진실로 선포된 순간이었다. 그제야 그 질긴 트라우마에서 벗어났다.
에서 특별취재팀이 꾸려진 지 11년 만이다. 그때 취재팀에 있었던 ‘우리’의 이름을 드러내고 싶다. 김이택, 임석규, 이태희, 김보협, 류이근, 김태규.
모순이 중첩된 현실, 하나의 진실이 드러났을 때 세상은 또 다른 부조리에 또렷이 직면한다. 현대차 하청업체로 자동차 시트를 생산하는 다스는 이제 ‘합법적’으로 이명박의 소유가 되었다. 그가 댄 3억9600만원 등으로 설립된 다스는 30년이 지난 지금 매출 2조원이 넘는 기업이 됐다. 기업가치는 8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의 불법과 편법으로 얼룩진 다스. “다스는 누구 겁니까?”에 이어 새로운 해시태그가 필요해 보인다. “다스는 어떻게 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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