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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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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의 역설

편집장의 편지
등록 2018-08-29 12:40 수정 2020-05-03 04:29

“미쳤어.” “왜?” “다들 난리야. 어제 2억8천만원 뛴 게 최고가였어. 다들 부동산만 생각해.” “헐!” “지금 3040 죽을 맛이야. 하루에 몇천, 몇억씩 오르는 전설의 시기야. 다들 정부 욕해.”

대화는 복덕방에서 걸려온 전화로 끊겼다. 휴직 중인 서보미 기자는 이사 가려고 일주일 전 집을 팔았다가 때아닌 집 구하기 전쟁을 치르고 있다.구로동, 상암동, 화곡동, 공덕동 등지 복덕방 20여 곳에 매물을 구한다고 말해놨으나, 가물에 콩 나듯 전화가 온다. 집이 하나 나와 보러 간다고 하니, 집주인은 5천만원을 더 불렀다.

속은 숯덩이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살지 고민이란다. 다시 1억원을 더 부를지 몰라서다.

몇 시간 뒤 회사 앞 식당. 이승준 기자가 서 기자와 카톡으로 나눈 대화를 마저 들려줬다. 서 기자 남편 친구네 얘기였다. 1억7천만원 차익을 남기고 오래된 홍제동 아파트를 팔았는데 옮기려고 맘먹었던 새 아파트가 그새 1억원이나 뛰었단다. 감당할 수 없어 결국 부모님과 합쳤다고. 아작아작 씹던 비빔밥의 열무가 목에 걸릴 뻔했다.

1억원이라니.

문득 12년 전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정말이지 식당, 술집에서 미친 집값 얘기가 빠지는 일이 없었다. 잊고 싶은 과거가 현재진행형으로 밥상에 다시 올라왔다는 건 위험 신호다.

집에 들어가 자는 아내를 깨웠다. 집값이 얼마나 뛰었는지 아냐며. 우리가 사는 장모님댁 집값도 꿈틀댔다. 1년새 8천만원이 뛰었다. 연간 상승률로 따져보니 18%였다. 맞벌이 부부가 열심히 일해 1년에 1천만원 저축하기도 어려운 세상인데. 며칠 전 지인이 페이스북에 띄운 글을 보면서도 설마 했다. “오랜만에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시세를 네이버에서 검색해봤다. 불과 1년 남짓 50% 넘게 뛰었다. 그전에 살던 집은 이사 올 때 대비 100% 약간 못 미치게 뛰었다.” 그게 현실이었다. 서 기자가 알려준 부동산 시세 앱을 깔아보니 1억~2억원 오른 아파트가 주위에 수두룩하다. 그제야 집값 기사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원인과 처방은 매체의 이념 성향 따라 제각각이었지만 현상 진단은 이구동성이었다. 폭등이었다.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며 종합부동산세 개편안을 발표한 게 7월 초인데, 효과가 없었다. 되레 역풍이 불었다. 엄포를 놨다가 뚜껑을 열어보니 ‘찔끔 증세’를 한 게 빌미가 됐다.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시장은 정책 발표 뒤 기다렸다는 듯 꿈틀댔다. ‘정책의 역설’이었다.

“정부가 대책을 발표할수록 상황은 더 꼬인다. ‘객관적인’ 그래서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언론의 태도는 결과적으로 정부 대책이 아무 효과가 없다고 선전할 뿐이다. 신이 난 이른바 시장주의자들은 공급만이 살길이라며 정부를 질타하는데, 이는 결국 집값이 더 오르라는 주술이나 다름없다.”

이 말은 영락없이 현재 상황과도 딱 맞아떨어진다.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이 2011년 (오월의봄)에서 널뛰기식 부동산 정책을 꼬집으면서 한 말이다. 그는 집값이 날뛰던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으로 부동산 정책을 주무했다. 당시 정부는 부동산 시장과 힘겨루기를 하면서 정책을 쏟아냈고 질 때마다 집값을 띄우는 불쏘시개로 쓰였다. 그가 이번엔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앉아 있다.

다시는 실패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참여정부가 왜 실패했냐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다만 어떤 경우든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가격 문제에 대해 물러서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오락가락하지 않겠다는 뜻이다.그의 말마따나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중앙과 지방이 엇박자다. 옥탑방 한 달살이 뒤 내놓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강북 프로젝트는 불붙은 부동산 시장에 기름을 끼얹었다. 예상보다 저강도 종부세 개편안이 낳은 1차 정책 신뢰의 하락에 이은 2차 신뢰 하락이다. 한두 번 더 쌓이면 정책은 신뢰를 잃는다. 그 뒤엔 백약이 무효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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