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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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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에게 또 질 것인가

편집장의 편지
등록 2018-07-10 16:35 수정 2020-05-03 04:28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땅이 너무 적다는 거야. 만일 나에게 원하는 만큼의 땅이 있다면 난 그 누구도 부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거야. 악마까지도.”

땅을 넓혀가던 바흠은 하루치로 계산해서 땅을 파는 바시키르인들을 찾아간다. 단돈 1천 루블에 하루 동안 돌아보는 모든 땅이 그의 소유다. 단 해 지기 전까지 출발한 장소로 돌아와야 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욕심은 점점 멀리 그를 이끌었다. 해가 완전히 진 뒤에야 출발했던 언덕에 도착한 그는 피를 토하며 숨을 거둔다. 톨스토이의 끝은 허망하다. 바흠이 얻은 땅은 2m 무덤에 불과하다.

땅에 눈이 멀어 악마의 꾐에 빠진 바흠은 건물 임대사업자란 꿈이 넘쳐나는 나라에선 너무 현실적이다. 그에게 허락된 욕망의 크기는 해가 떠 있는 하루였다. 21세기 한국에서 땅을 향한 욕망의 제어장치는 세금일지 모른다. 그 가운데서도 보유세를 꼽을 수 있다. 2005년 처음 시행됐으나, ‘이명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게 문제다. 문재인 정부가 고장난 시계를 수리하겠다고 나섰다. 7월3일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에서 종합부동산세 개편 권고안을 내놨다. 세율 등을 올려 주택(종합 및 별도합산토지 제외) 보유자에게 2016년 대비 897억원(2019년치)의 세금을 더 걷겠다는 안이다. 사흘 뒤 기획재정부는 재정개혁특위보다 624억원 많은 개편안을 발표했다.

잠시 시계의 ‘연침’을 종부세 도입 3년차인 2007년으로 돌려보자. 당시 38만 명에게서 1조2천억원의 종부세를 거뒀다. 지금, 재정개혁특위나 기재부의 개혁(편)안은 이 잣대에 한참 못 미친다. 기재부 개편안도 노무현 정부의 종부세에 견줘 3분의 1 수준이다. 누더기가 된 종부세는 11년 지났지만 진일보는 둘째 치고 제대로 된 회복에서도 너무 멀다.

나는 종부세 대상은 아니다. 재산세 36만원을 낸다. 아파트 가격과 면적의 수십 분의 1에 불과한 중고차 보유로 자동차세는 그보다 겨우 2만원 적은 34만원을 낸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국세청은 2006년 펴낸 에서 이를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보유세 부담이 적다는 얘기다. 기재부의 개편안 산식대로라면 현재 17억원짜리 주택 보유자는 5만원을 더 내고, 23억6천만원짜리 주택을 보유한 사람의 늘어난 세 부담은 28만원이다. 이 금액이 많은가? 종부세 시행 뒤 과세 대상이 밀집한 서울 강남 지역의 집값(KB주택매매가격 종합지수 기준)은 50% 넘게 올랐다. 그새 세금은 비례해서 오르기는커녕 되레 크게 줄었다.

종부세는 왜 제대로 회복되지 못하는 걸까?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고장난 시계를 고치는 수리공의 ‘종부세 트라우마’다. 트라우마는 상처의 기억을 회피하거나 은폐한다. 또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방어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그리고 지난해 치른 대선에서 공약집에 ‘종부세 회복’을 못박지 않았다. 종부세를 노무현 정부의 성과가 아닌 실패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는 평가와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탓이다. 그런데 그 기억은 잘못됐다. 2004년 말 종부세 찬성 여론은 86.9%에 이른다. 그게 불과 2년 만에 35%로 크게 줄었다. 부정적 여론이 급증한 배경은 종부세가 아니라 부동산 폭등에 있었다. 부동산 값이 급등하면서 노무현 정부의 대부분 정책에 대중의 반대와 지지 철회가 이어졌다. 이는 반대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해나간다면, 2007년 수준으로 종부세를 현실화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보수 언론과 정치권이 짠 프레임은 종부세 트라우마를 낳았고, 아직도 작동 중이다.

보유세로 부동산을 향한 욕망의 크기를 줄여나가야 할 때가 됐다. 안 그러면 땅을 한없이 넓히려다 제 목숨을 잃은 바흠처럼 우리 경제는 사경에 내몰릴지 모른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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