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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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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할 길

등록 2017-10-11 14:22 수정 2020-05-03 04:28

솔직히 고백하자면, 전 에너지 정책에선 다소 ‘보수’ 쪽에 치우친 사람입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기념행사 기념사’에서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습니다”라고 선언했을 때 미약한 현기증을 느껴야 했습니다.

탈핵은 분명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대세입니다. 현기증이 난 것은 문 대통령이 다소 서두른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에너지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놓인 상황을 꼼꼼히 검토해 좀더 명확한 비전을 제시해줬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탈핵은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은 예민한 정치 문제이기도 하니, 속전속결이 올바른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방향이 옳은 만큼 집권 초기 높은 지지도를 바탕으로 문 대통령이 뚜벅뚜벅 탈핵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기 응원합니다.

문 대통령이 이날 거친 형태로 제시한 ‘탈핵 로드맵’은 다음과 같습니다.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간다. 준비 중인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은 전면 백지화한다. 원전의 설계수명은 연장하지 않는다”입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고, 한국 사회가 일관되게 탈핵을 추진한다면 2054년 신월성 2호기를 폐쇄하는 시점엔 신고리 3호기 등 4기(설계수명 2075년)가 남게 됩니다. 문 대통령은 2050년대 중반을 한국 사회가 탈핵을 사실상 완수하는 시점으로 잡은 것입니다. 이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30년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매년 발간하는 (2016년판)를 보면, 2015년 전체 전기 생산량 가운데 원전이 차지하는 비율은 31.2%였습니다. 이에 비해 재생에너지로 분류할 수 있는 수력과 대체에너지의 비율은 각각 1.1%와 4.0%에 불과합니다. 한국 사회는 탈핵을 위해 원전이 멈추면 사라지는 31.2%의 에너지원을 찾아내야 합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대선 공약에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20%로 늘리고 이를 적극 유도하기 위해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시가보다 비싼 가격에 구매해주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의 부활 계획을 밝혔습니다.

옆나라 일본의 예를 들어볼까요. 일본도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참사를 겪은 직후 발전차액지원제도를 도입합니다. 2016년 12월 말 현재 이 제도에 따라 새로 설치된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는 3365.8만kW에 이릅니다. 일반적인 원전 1기의 용량이 100만kW이니 4년 반 만에 원자로 33개 용량의 발전설비가 만들어진 셈입니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합니다. 새 발전설비의 90% 이상이 설치하기 쉬운 태양광에 몰렸습니다. 그러나 태양광의 발전 효율은 13%에 불과합니다. 비가 오거나 구름이 끼거나 밤이 되면 발전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설비를 때려 지었는데도 2015년 말 현재 일본의 에너지 생산량 가운데 태양광의 비율은 3.4%에 그쳤습니다(물론 놀라운 수치이긴 합니다). 그에 비해 일본 에너지 생산에서 수력의 비율은 9%(!)나 됐습니다.

이번호 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결론을 내는 시점에 맞춰 탈핵 통권으로 냅니다. 탈핵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탈핵 추진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온갖 어렵고 까다로운 문제가 속출할 것입니다. 똑 부러진 묘수가 없으니 사회 전체의 역량을 결집해야 합니다. 에너지를 적게 쓰는 쪽으로 산업구조를 바꿔야 하고, 다양한 재생에너지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민주화가 한 방의 승부가 아니었듯, 탈핵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힘들지만 가야 할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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