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의 죽음을 추모하는 기사를 넘기며, 그가 시인 윤동주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저에게 ‘야한 작가’ 마광수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노래한 청년 윤동주는 완벽한 대척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마 교수의 제자인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는 제1179호 기고에서 “‘잘난 척하지 않는 문학’을 늘 강조하던 그의 문체 미학으로 보았을 때 윤동주는 들어맞았다”고 썼는데, 그 글을 통해 처음으로 마 교수와 윤동주의 접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글에 고루한 ‘갑빠’ 따위는 없는 윤동주의 낮은 시선이 마 교수의 취향에 맞았던 거지요.
대부분의 제 또래 40대 아저씨들처럼 ‘한때 문청’이던 저 역시 윤동주의 시를 좋아했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좋아한 시는 ‘쉽게 쓰여진 시’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라는 선언으로 끝나는 이 시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런데 ‘육첩방’은 뭘까요?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 육첩방이란 다다미 여섯 장 정도 크기의 작은 방을 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육첩방이니 방 한쪽에 앉은뱅이책상과 이부자리 한 채를 놓고 나면, 성인 남자 한 명이 몸을 누일 좁은 공간이 나왔을 겁니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는 표현은 윤동주가 남긴 수십 편의 시 가운데 간접적으로나마 일본을 언급한 유일한 구절입니다. 이 얘길 을 쓰신 송우혜 선생님을 통해 전해들은 뒤 그의 시편을 찾아내 모조리 읽었습니다. 그는 과연 ‘일본’이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더군요. 그랬던 윤동주의 심정이 떠올라 윤동주가 “대학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다녔던 도쿄 이케부쿠로의 릿쿄대학을 두어 차례 둘러본 적도 있습니다.
이번호 표지이야기에선 ‘청년주거’를 다룹니다. 메인 기사는 지난 7월 말부터 6주 동안 교육연수생으로 활동한 김보현씨의 ‘도심 셰어하우스 6주 생활기’입니다. 그가 쓴 글을 읽다 “필요한 것은 (전망 좋은) 서울 신축 아파트 구석의 내 공간일 뿐”이라는 구절을 읽고, 외롭고 쓸쓸했을 윤동주의 육첩방을 떠올렸습니다. 보현씨는 어쩐지 밤늦게까지 퇴근하지 않더군요. 생각해보니, 소설가 박민규씨가 2004년 발표한 단편 ‘갑을고시원 체류기’ 속 주인공도 귀가 시간이 늦었습니다. 젊은이들은 어딘가에서 자신의 ‘육첩방’을 찾아야 하지만, 한국의 청년주거 현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열악해지기만 합니다.
가난한 청년들의 열악하고 저렴한 주거지로 주목받던 고시원의 통계가 궁금해 자료를 뒤져봤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정보를 관리하는 곳은 국민안전처(옛 소방방재청)더군요.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엄청난 인명 피해가 나니 평소 통계를 파악해 관리하는 것 같았습니다. 2000년 초부터 급증하던 고시원 수는 2012년 1만 개를 넘긴 뒤 증가세가 한풀 꺾였습니다. 청년들은 이제 칙칙한 ‘고시원’ 대신 들어서 기분 좋고, 불러서 상쾌한 래미안·푸르지오·자이 같은 도심 속 셰어하우스로 숨어들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주로 이용하는 소형주택의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너무 높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1인 가구나 청년 가구를 위한 정부의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6주 동안 고생한 김보현씨를 포함해 교육연수생 5명에게 고맙고 미안하단 말을 전합니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서로에게 의미 있고 소중한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길윤형 편집장 charisma@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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