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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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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함께 있다

등록 2017-06-27 16:42 수정 2020-05-03 04:28

‘강정으로 할까, 옥자로 할까!’

신문의 얼굴은 1면이고, 주간지의 얼굴은 당연히 ‘표지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신문 1면 기사를 고르는 것보다 주간지 표지 기사를 고르는 게 더 고된 작업입니다. 왜 그럴까요?

신문에서 1면 기사를 고르긴 비교적 쉽습니다. 매일 아침 신문 편집국엔 그날 주요 현안에 대한 각 부서의 보고가 올라옵니다. 6월20일치 1면을 예로 들어볼까요? 머리기사는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일자리기금 2500억원 내겠다”는 제안입니다. 한국 사회가 풀지 못하는 큰 현안 가운데 하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 격차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정규직 노조에서 처음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은 것입니다. ‘서브’엔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신규 원전 백지화” 선언이 자리잡았습니다. 이 역시 대통령이 사실상 처음 밝힌 ‘탈핵 발언’이란 점에서 1면으로 오르기 충분합니다. 어찌됐든 오늘 쓴 기사는 내일치 신문에 실리고, 내일엔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릅니다.

주간지는 괴롭습니다. 의 기사 마감은 매주 금요일입니다. 한 주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핫’ 이슈도 다음주면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게다가 한 주에 여섯 번 1면 기사를 만드는 신문과 달리, 잡지는 한 주에 딱 한 번 의미 있는 ‘비장의 카드’를 내놓아야 합니다.

이번호 표지이야기는 6월 초 제1164호(‘제주 강정 10년의 싸움’)에서 다뤘던 강정입니다. ‘기시감이 든다’는 독자가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마침 의 ‘젊은 피’ 변지민 기자가 봉준호 감독의 신작 에 등장하는 슈퍼돼지 사연을 담은 발랄한 특집 기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생명공학 기술로 옥자를 만들 수 있을까, 만든다면 먹을 수 있을까, 유전자조작(GMO) 동물이 생태계를 파괴하진 않을까? 흥미로운 의문에 질문이 꼬리를 뭅니다. 한편 강정 기사를 위해 김완·김선식 기자는 지난 6주 동안 제주를 오가며 주민 100여 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였습니다. 대한민국 언론 가운데 이같은 무모한 설문조사를 감행할 수 있는 곳은 밖에 없을 거라 자부합니다.

제 고민을 끝낸 것은 10년 전 기억이었습니다. 막내 사회팀 기자인 저는 2005년 겨울부터 1년 넘게 경기도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 반대운동을 취재했습니다. 투쟁의 막바지이던 2006년 12월, 저 역시 대추리에 남은 주민들에게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대추리 싸움엔 해방 이후 한국 사회를 규정해온 다양한 쟁점이 녹아 있었습니다. 첫째 한-미 동맹이 한국인들에게 갖는 의미, 둘째 국익이란 이름으로 개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해온 한국의 후진적 갈등관리 시스템, 셋째 어쩔 수 없이 불복종운동에 나선 마을 사람들에게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였습니다. 대한민국은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대신 대추리 노인들의 늙은 육신에 전가했습니다. 그때 마을의 방효태 할아버지가 던진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난 사람들이 대추리를 버렸다고 생각해!”

이후 10여 년이 흘렀습니다. 제주 강정에서, 서울 용산에서, 경남 밀양에서, 경북 성주에서 비극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대한민국의 갈등관리 시스템을 이제 바꿔야 합니다. “우린 버리지 않았습니다. 우린 곧 당신들이고, 여전히 우린 함께 있어요!”

길윤형 편집장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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