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이상 세상에 없는 젊은이의 웃음을 바라보고 있자니, 잠시 눈앞이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난해 10월26일 숨진, 드라마 의 조연출 이한빛 PD의 이야기입니다.
은 창간 때부터 매주 한 명씩 독자와 만나 그들의 사연에 귀 기울이는 인터뷰를 연재해왔습니다. 2010년 4월16일 발행된 제807호 인터뷰(당시 ‘독자 10문10답’, 현 ‘독자 단박인터뷰’)의 주인공은 당시 서울대 정치학과 3학년 이한빛씨였습니다. 사진 속에서 하얀 목도리를 칭칭 감은 이씨는 정면을 응시한 채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이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인터뷰에서 이씨는 ‘졸업해서는 어떤 일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책 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짧은 답변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이게 직업이 될 수는 없으니까, 인권운동사랑방 같은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것도 좋겠다. 나의 고민과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인터뷰가 실린 뒤 7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씨가 어떤 삶을 살았고, 그의 생각이 어떻게 변해갔는지 저로선 알 도리가 없습니다. 아마도 이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거친 취업 경쟁을 거쳐 모두가 선망하는 방송국인 CJ E&M에 입사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씨는 입사 후 9개월이 지난 지난해 가을 서울 시내 한 모텔에서 숨진 채 발견됩니다.
지난 4월18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이한빛씨의 어머니 김혜영(59)씨는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PD가 되어 자신이 고민해온 일을 함께 공유하고,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멋진 작품을 만들겠다는 아름다운 청년 한빛의 엄마로 아들에게 갚아야 할 것이 많기에 아들의 죽음과 직면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한빛이를 어떻게 해야 살릴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최선을 다할 것이기에 하늘나라에서 기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이씨의 어머니가 요구한 것은 회사의 ‘책임인정 및 공개사과’와 ‘책임자 징계’였습니다.
이씨가 목숨을 끊을 무렵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청년 과로사와 관련해 열띤 논쟁이 진행됩니다. 계기는 도쿄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뒤 2015년 4월 일본의 광고 전문 대기업 덴쓰에 입사한 다카하시 마쓰리의 자살 사건이었습니다. 마쓰리의 어머니 유키미(54)도 이한빛씨의 어머니 김혜영씨처럼 회사와 국가를 상대로 힘겨운 투쟁에 나섭니다. 투쟁의 결과, 일본 정부는 다카하시가 월 100시간이 넘는 초과근무를 견디다 못해 숨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덴쓰 역시 마쓰리의 죽음에 사죄의 뜻을 밝히고 재발방지책을 내놓습니다. 이 모든 투쟁을 마무리한 뒤 어머니 유키미는 2017년 1월20일 마지막 기자회견에 나섭니다.
“회사와 합의에는 이르렀지만 어떤 사죄가 있다 해도, 재발방지책이 나온다 해도 딸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지금도 마쓰리가 도쿄의 어딘가에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울음) 그러나 딸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투쟁으로 딸은 (일본) 노동문제의 상징이 되어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딸과 지금까지 과로로 숨진 이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덴쓰가 꼭 개혁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CJ E&M 쪽에 그대로 들려주고 싶은 어머니의 호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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