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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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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5-12-22 17:53 수정 2020-05-03 04:28

자취방은 지하에 있었다. 연립주택의 지하 보일러실 한구석, 작은 부엌이 딸린 네댓 평 단칸방에서 대학 시절의 1년여를 보냈다. 벽 높은 곳에 한 팔 너비의 창문이 있었다. 지상으로 향하는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창으로 드나드는 것은 주로 찬 바람, 가끔 햇볕, 어쩌다 또각거리는 행인의 구두 소리. 보증금 200만원에 월 20만원짜리 방이었다.

어느 날, 후배가 구속됐다. 자취방에 찾아와 내 외투를 제 것처럼 가져가 입던 가난한 녀석이었다. 천애 고아와 다름없어 뒤봐줄 이도 없었다. 구치소 면회장의 투명 유리 너머에서 그가 말했다. “형, 나 좀 여기서 꺼내줘.” 세상천지를 몰랐으므로 궁리라고 나온 게 애걸이었다. 무작정 검사를 찾아갔다. 무릎 꿇을 결심으로 갔지만, 뚱뚱한 검사는 그 틈을 주지 않고 째려보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여기가 어디라고 나대느냐’는 비웃음이었다.

서울 서초동 어느 빌딩 사무실에서 만난 변호사는 200만원을 원했다. 자취방을 뺐다. 보증금 200만원을 변호사에게 주고 머리를 조아렸다. 처음엔 만날 때마다 웃던 그가 돈을 받은 뒤엔 무뚝뚝해졌다. 지하 단칸 자취방과 맞바꾼 변호사는 “기다리라”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선고일에 맞춰 법정에 갔다. “모두 기립하라”고 했다. 법정에 들어선 판사는 몇 마디 읊조리고는 유죄를 판결하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판사가 나갈 때 또 일어서라고 했다. 사실과 사정을 충분히 헤아리지 않고, 앙상한 법률에 근거해 기계적 판결을 하는 그에게 왜 존경의 예를 차려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후배는 전과자가 됐고 나는 자취방을 잃었다. 서너 달 동안 동아리방의 냄새나는 소파에서 잤다. 사기당한 느낌인데 누구에게 하소연할지 알 수 없었다. 낮고 가난한 자들이 법률의 세계에 휘말려 법조인들에게 머리 조아리다 끝내 배신당한 수많은 사례가 우리 주변 곳곳에 있다. 법은 무서운 게 아니라 더러운 것이고, 존중하여 복종하는 게 아니라 살아보려고 따르는 척한다는 것을 법조인만 모르고 장삼이사들은 다 안다.

처음 ‘올해의 판결’ 기획을 시작한 8년 전, 그 일을 거들면서, 자취생의 보증금을 꿀꺽하고 고학생을 전과자로 만들어버린 검사·변호사·판사를 생각했다. 그들이 어디서 배 두드리며 웃고 지낼지 생각했다. 나는 법의 지배를 신뢰하지 않는다. 입법·행정·사법 가운데 가장 못 미더운 것이 사법이다. 어쨌건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언젠가 바꿀 수 있다. 일삼아 비판도 할 수 있다. 지지한 적도 동의한 적도 없는데 영문도 모르고 무조건 따라야 하는 유일한 권력이 사법이다.

그들 역시 정치적·이념적·계급적 편견에 사로잡혀 ‘주관적 판단’을 내리고, 특히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 것을 내치고 양심적이고 정의롭게 판단할지는 온전히 그 개인에게 맡겨져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 국회, 언론과 달리 비평의 도마에서 벗어나 최종적·절대적으로 군림한다. 그런 법률체계를 믿느니 정의를 믿겠다. 적어도 정의는 사회적·역사적으로 재구성된다.

다만 또 하나의 비극이 있다. 법을 불신해도 좋다고 여기는 나 같은 사람의 대부분은 실제로는 법에 의해 죽임당하지 않는다. 반면 가난하고 약하여 궁벽한 처지에 몰린 자들은 법에 의해 살고 죽는다. 시간은 약자의 편이 아니므로 정의는 종종 유보되어 그들을 저버린다. 그 칼자루를 판사가 쥐고 있다.

‘올해의 판결’은 판사를 기억하자는 기획이다. 이름을 걸고 판결했으니 응분의 책임을 묻자는 기획이다. 정의의 감각은 죽어가고 권력의 근육만 판쳤던 2015년의 마지막을 그들의 이름으로 갈음한다. 특별히 ‘경고한다, 이 판결’에 등장하는 이름에 주목한다. 우리가 보기에 당신들은 정의의 반대편에 서 있다.

안수찬 편집장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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