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김해의 거리에선 걸음마다 소금 냄새가 인다. 토박이도 모르는 그 냄새를 서울에 사는 주간지 편집장은 단박에 감지하고 연신 킁킁거렸다. 한반도 끝에 있는 그 도시에 의 최전선이 있다. 전국 대여섯 곳에 흩어진 판매센터 가운데 하나가 김해에 있다. 10명이 일하는데, 한명 빼곤 모두 여성이다. 모두 김해 시민이다.
며칠 전 그곳을 찾았을 때, 그들은 나를 냉면집으로 이끌었다. 태어나 두 번째로 진주냉면을 먹었다. 진주냉면엔 역시 육전인데, 육전을 먹으면 소주에 끌리고, 소주 한잔엔 냉면이 필요하다. 냉면·육전·소주가 서로를 불러대는 점심 자리는 돌연 혼미해졌다.
그들 가운데 누군가 ‘오로라주’를 만들었다. 소주와 맥주를 섞을 때까진 평범했는데, 마지막 순간 스마트폰 불빛 위에 잔을 올렸다. 지구 끝에서 볼 수 있다는 오로라가 강림했다. 비행기 시간만 아니라면 고만 퍼질러앉고 싶었다.
그들은 에 대한 온갖 불만을 직접 듣는다. ‘진상 고객’이 있지만, ‘힘내라’고 응원하는 이도 많다고 그들은 말했다. 그래도 이치에 맞지 않는 잔소리나 성추행에 가까운 언어폭력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것까지 감당한 다음, 정기구독을 권유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모든 뉴스가 인터넷과 모바일로 ‘무료 공급’되고 있다. 그런데도 주머니를 털어 매체를 구독하게 만든다는 것은 불가해한 일이다. 마케팅 연구자들은 이를 ‘브랜드 이미지 소비’와 연관시킨다. 상품 소비는 자아 표현과 잇닿아 있다. 내가 선택한 상품 브랜드가 곧 나를 설명한다. 이상적 자아, 즉 ‘되고 싶은 나’를 보여주기도 한다.
의 브랜드 이미지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나온 적은 없다. 다만 어느 연구논문(구승회, ‘브랜드 의인화이미지와 자아일치성에 관한 연구’, 2005)에서 국내 10대 일간지의 브랜드 이미지를 분석한 적이 있다. 는 뚱뚱하고 나이 든, 보수적이면서도 진지하고 강인하며 무뚝뚝한, 정장이 어울리지만 성실하거나 세련되지 않은 남성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는 깡마른 몸매에 캐주얼 복장이 어울리는, 진보적이며 강인하고 성실하지만, 무뚝뚝하고 세련되지 않은 젊은 남성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10년 전 연구다. 게다가 은 와 다르다. 그러나 만약 이 깡마르고 무뚝뚝하고 세련되지 못한 남자를 표상한다면, 세상에나, 누가 그런 브랜드에 ‘자아를 투사’하여 돈 주고 소비할 것인가.
브랜드 이미지를 새로 만드는 것은 깃털을 쌓아 태산을 올리는 일이다. 디테일이 이미지를 만든다. 콘텐츠, 디자인, 서비스 등에서 누적되고 융합된 결과물이 있어야 좋은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차근차근 그러나 쉼없이 그러다 결정적으로 혁신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착하고 아름답고 좋은 사람들이 자신을 투사하는 매체가 되고 싶다.
그날이 올 때까지, 이 모양새나마 정기독자가 필요하다. 혁신에는 자원이 필요한데, 우리의 (지속 가능한) 자원은 오직 정기독자로부터 비롯한다. 현재로선 판매센터 직원들이 전화로 구독을 권유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이토록 괜찮은 매체를 팔아낼 방법이 그토록 구시대적이라는 것을 토로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진주냉면을 나눠 먹은 그들이 일하는 김해 센터야말로 최전선이다.
한 달 전부터 정기독자를 집중적으로 모시고 있다. 편집장의 전자우편으로 이름과 전화번호만 적어 보내도 구독신청을 대행해드린다. 동전 한 닢 주시면,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진실을 갈구하며, 공정의 잣대로 성찰하는 심층 보도로 보답하겠다. 어쩌면 오로라주 한잔 만들어 올릴 수도 있겠다. 로마 신화에서 오로라는 새벽의 여신이다. 새벽을 여는 매체로 보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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