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말 국민의힘의 구원투수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위기에 빠졌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거듭 실패하며 하락세에 빠진 당 지지율을 좀처럼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 혼란만 키웠던 대통령 담화나 이종섭 전 주오스트레일리아 대사 논란 등 윤 대통령이 곳곳에 던져놓은 지뢰를 제대로 제거하지 못하면서 고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한 위원장이 주요 국면마다 내놓은 메시지 역시 ‘무능한 정부와 차별화된 집권여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엔 여러모로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한 위원장은 치열한 선거전의 필수 조건인 ‘당 메시지 조율’에 실패한 것을 넘어 본인의 정체성 혼란까지 겪는 모습이다. 그는 2024년 4월1일 선거 유세 과정에서 “정부가 부족하지만 그 책임이 저한테 있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말하며 정치권 안팎의 비판을 자초했다. 이날 발언은 같은 당 소속인 홍준표 대구시장마저 “(이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했으니 책임이 크다”고 지적할 정도로 무책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판이 이어지자 한 위원장은 다음날 “모든 잘못과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말을 바꾸며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였다.
한 위원장은 같은 날 발표한 대통령 담화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메시지 혼선을 빚었다. ‘의대 정원 2천 명 확대’ 필요성을 강조한 담화 직후 한 위원장은 “의사 증원은 국민 건강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숫자에 매몰될 문제는 아니다. (…) 국민이 원하는 방향대로 정부가 나서주길 바란다”며 대통령과 각을 세웠다. 그러나 이날 오후엔 “정부도 2천 명 숫자를 고수하지 않고 대화할 거란 입장을 밝힌 바 있다”는 상반된 메시지를 내놓으며 당정 간 소통 미흡을 드러냈다. 비대위원장조차 혼란을 거듭하는 사이 당내에서도 조율되지 않은 메시지가 이리저리 분출됐다. 한 위원장의 측근으로 꼽히는 함운경 국민의힘 서울 마포을 후보가 담화 직후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했다가 다음날 언론 인터뷰에서 “좀 성급하게 내질렀다”고 말을 바꾸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 게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정치 초보자인 한 위원장이 중요한 선거 직전에 등판한 것부터가 ‘잘못 끼워진 단추’였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신선한 이미지를 앞세우고 기존 정치문법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총선에서 내보여야 할 보수 정당으로서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기존의 보수 정치인과는 다른 새로운 감각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현재 한국의 현실이나 보수 정당이 가진 사회적 책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도 “집권당의 대표가 야당의 두 인물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를 심판하는 게 총선의 목표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한심하다”며 “집권당이 얼마나 선거 준비가 안 됐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한동훈 위원장이 위기를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는 건 한층 더 거칠어진 그의 말이다. 그는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3월28일 “정치 자체는 죄가 없다. 정치를 개같이 하는 사람이 문제”라는 막말을 쏟아냈다. 전날 한 위원장이 스스로 당내에 ‘막말 경계령’을 내린 것이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거친 표현은 계속됐다. 한 위원장은 이후에도 야당을 향해 “쓰레기” “후진 놈” 등의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강한 모습을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라며 “선거에서의 발언에 어느 정도의 전략이 들어 있다고 하더라도 때로는 감정이 그대로 반영되기도 한다. 실제로도 화가 좀 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야당에 대해선 거친 공세를 펴는 반면, 유권자를 향해서는 몸을 바짝 낮추는 전략을 쓰고 있다. 그는 최근 유세 현장에서 “우리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 저도 인정한다”며 ‘반성’을 강조했다. “여러분을 위해 박박 길 준비가 돼 있다”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선거 막판 위기감 속에 튀어나온 읍소 전략이 지지율 반등의 계기가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중도층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읍소 전략을 펼치기 이전에 세력 규합을 통한 ‘파이 키우기’를 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어느 정당이든 지지율은 유권자 연합의 성격을 갖는다. 보수 정당도 중도 보수나 개혁 보수 등이 합쳐져 하나의 지지율을 형성한다”며 “초기부터 유승민 전 의원 등에게 역할을 줬어야 하는데 윤석열 대통령의 눈치를 보느라 이를 못했던 것이 한계”라고 말했다.
한 위원장의 짓눌린 리더십은 결국 ‘윤석열 아바타’라는 이미지를 스스로 극복하지 못한 탓이 크다. 그가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등판한 직후 정치권 안팎에서는 그가 김건희 여사를 향해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에 주목했다. 이는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리트머스시험지였다. 그러나 한 위원장은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과 관련한 특검법은 ‘악법’으로,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은 ‘몰카 공작’으로 규정지으며 초반부터 차별화에 실패했다. 대통령실로부터 비대위원장직 사퇴 압박을 받은 1차 윤-한 갈등 때도 잠시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듯했지만 곧바로 90도 폴더 인사로 화해 모드를 조성하며 선을 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2차 윤-한 갈등의 도화선이 된 이종섭 전 대사 논란에서 한 위원장이 요구한 것은 이 대사의 조기 귀국이었다. 그러나 결국 여론에 떠밀려 이 전 대사의 사임까지 이뤄진 뒤에야 해당 사태가 수습됐다. 이번 대통령 담화 국면에서도 한 위원장이 더 강한 메시지를 던져야 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창렬 교수는 “윤 대통령이 워낙 강해서 그런지 한 위원장이 자기 소신을 밀고 나가는 부분이 상당히 미진했던 것 같다”며 “대통령 담화 이후에도 대국민 사과 요구 정도까지는 나와줘야 중도층의 마음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 초보자의 ‘원톱 리더십’에 한계를 느낀 국민의힘 후보들은 자력갱생의 길에 나섰다. 격전지 후보들이 당의 상징색인 빨간색 대신 흰색 점퍼를 입으며 당과 차별화를 꾀하는 모습은 한 위원장의 리더십에 대한 성적표다. 총선이 끝난 뒤 한 위원장은 ‘윤석열 아바타’를 벗어나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까.
송채경화 한겨레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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