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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은 대통령과 친한 순이잖아요

검찰 출신으로 도배한 ‘편중 인사’와 법치로 포장한 ‘수사만능주의’가 불러올 결과는
등록 2022-06-10 15:51 수정 2022-06-10 22:54
윤석열 대통령(왼쪽)이 2022년 5월26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국무위원 임명장을 수여한 뒤 나란히 서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왼쪽)이 2022년 5월26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국무위원 임명장을 수여한 뒤 나란히 서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은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물을 쓰는 것”이 인사 원칙이라 했다. 이 말에는 두 가지가 생략됐다. 검찰 안에서. 나랑 친한 사람 중에서.

‘검수완판’(검사와 수사관의 완전한 판)이다. 이쯤 되면 교육비리 수사를 해본 검사에게 교육부를, 의료소송 경험이 있는 검사에게 보건복지부를 맡기고 싶지 않을까. 놀랍지 않다. 법무부 장관은 글로벌 사법행정을 할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춘 이고, 금융감독원장은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가진 금융범죄 수사를 많이 한 이니까.

기자들이 검찰 편중 인사를 지적하자 대통령은 “과거엔 민변 출신들이 도배를 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전임 정권도 그랬는데 나도 좀 그러면 어떠냐는 ‘배 째라’식 태도이다. 이유라도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성의조차 없다.

뭐가 이렇게 쉽고 허술한가. 외국 매체 기자에게 남성 편중을 ‘글로벌하게’ 지적받고, 한 참모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더니, 그 직후 단행한 장차관급 인사에서는 모두 여성을 지명했다. 쓴소리를 새겨들은 듯하나 급하게 한 부작용이 금세 드러났다. 만취 운전에 논문 ‘자기 표절’을 한 교육부 장관 후보와, 관사 재테크와 정치자금으로 차량 수리를 하는 등 ‘자기 복지’에 매진해온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라니. 도덕성 논란으로 낙마한 이들의 후임이기에 더 기가 막힌다. 대체 검증을 하기는 한 건가.

취임 한 달이 되도록 국정의 중심이 무엇인지 감이 안 잡힌다. 정책도 얼렁뚱땅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나 병사 월급 200만원 등 주요 공약을 파기하고 별다른 설명도 없다. 온통 검찰 출신으로만 앉혀놓고는 그게 곧 법치라고 우긴다. “미국 같은 선진국을 보면 거번먼트 어토니(정부 쪽 법률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정관계에 폭넓게 진출했다”며 “그게 법치국가”라고 했다. ‘법잘알’ 검찰 출신이 일사불란하게 일한다 치자. 지금 시대에 뭐든 ‘법대로’면 다 해결되나. 당장 북한 7차 핵실험 위기나 화물연대 파업이 그리되나. 최대한 넓고 깊게 살펴야 할 ‘통치’와 나쁜 놈 골라내 때려잡는 ‘수사만능주의’가 등치될 때 과연 어떤 결과를 보게 될까.

출근길 문 앞에 서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모습에서도 격의 없는 소탈함보다는 정제 안 된 허술함이 더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공정거래위원장 후보군에 특정 인사가 제외됐다며 검찰 편중 인사 여론을 고려했다고 ‘실드’를 쳐줬으나, 대통령이 다음날 출근길에서 “전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검찰 출신 인사를 제외하지 않았다는 건지, 제외하긴 했는데 비판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건지도 분명치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자주 말을 주워 담아야 하고 대통령의 일부 발언은 ‘번역기’를 돌려야 한다. 이렇게 툭툭 내뱉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부디 이를 ‘소통’이라 여기지 않길 바란다.

백번 양보해 스타일이라고 치자. 꼼꼼하고 섬세하고 신중하다고 국정을 잘 이끌어간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천운도 국운도 있는 법이니까. 그렇다면 최소한의 ‘애민 정신’을 지니고는 있나. 지닌 티라도 내나.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경남 양산 평산마을의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욕설과 악담을 퍼붓는 유튜버 시위꾼을 두고도 그저 “법대로” 타령이다. ‘갬성’이 워낙 ‘아재’라 둔감하다고 여기기에는 뒤끝이 묻어난다. 협량하고 옹졸하다. 인근에 사는 고령 주민들이 겪는 고통에도 아랑곳없다.

대통령이 되는 게 목적이었지 대통령이 돼서 뭘 하겠다는 생각은 없던 이가 너무 큰 권력을 가졌다. 게다가 ‘법대로’ 따지면 전임 정권에 견줘 자신은 ‘선하다’는 비교우위에 사로잡혀 있다. 세상에 ‘선한 권력’은 없다. 다양하게 모여도 스스로 경계하지 않으면 위험한데 이렇게 초록이 동색인 통치집단을 꾸려놓고는 별다른 경계심도 긴장감도 없다니. 심지어 잘한다고 믿다니.

사람들이 이 모든 걸 두고 보는 이유는 기대가 많아서가 아니다. 인내심이 많아서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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