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당의 대통령선거 후보들이 뽑히거나 추려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후보가 누적득표율 절반을 겨우 넘겨 결선 없이 선출됐고, 정의당은 심상정 후보가 결선까지 가서 됐다. 국민의힘은 원희룡 후보가 4강에 턱걸이해서 유승민, 윤석열, 홍준표 후보와 겨루게 됐다. 모두 ‘가까스로’ 됐다. 민주주의는 이렇게 변비 같은 것일까.
저조한 표차 탓인지 승자들도 그리 개운하지는 않아 보인다. 특히 이재명 후보는 선출 직후 응당 따르는 ‘기대심리’나 ‘컨벤션 효과’를 도통 누리지 못하고 있다. 경쟁자였던 이낙연 전 대표 쪽뿐 아니라 당 안팎에서 ‘리스크’니 ‘플랜 비(B, 대타)’니 하는 이야기가 여과 없이 나오는 형편이다.
개운치 않기로는 유권자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다음 단계로 옮겨가야 하는데 영 불편하고 찝찝해 엉거주춤하게 된다. 실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찍을 사람이 없거나 정하지 못했다’는 응답이 많다. 힘센 두 당에서 뽑힌 후보나 뽑힐지 모를 후보가 하필 엄청난 의혹에 휩싸여 있다. ‘대장동 특혜’ 의혹이나 ‘고발 사주’ 의혹은 둘 다 내용이 역대 최고라 후보가 관여했거나 하다못해 인지했다는 사실이 하나라도 나오면 곧장 ‘사퇴 각’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때 정작 정치는 ‘실종 모드’거나 ‘실족 모드’다. 국민의힘은 구태 방식으로 볼륨만 높인다. 대장동 특혜와 관련해 드러난 것으로는 가장 혐의가 똑 떨어지고 수뢰액도 어마무시한 소속 국회의원(곽상도)을 꼬리 자르기 해버리고는 되지도 않을 특검 타령만 하고 있다. 스스로 탈탈 털어 내보여야 할 고발 사주 문제는 아예 없는 취급이다. 검찰 출신 소속 의원(김웅)이 개입된 정도를 넘어 주도했다고 볼 만한 ‘검·당 유착’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나몰라라다.
민주당은 임기 말 대통령보다도, ‘충격적으로 이긴’ 후보보다도 정치력이 현저히 ‘달려 보인다’. 당내 경선에서 무효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도 진작 깔끔하게 정리 못했다. 경기도 국정감사 전에 도지사직을 사퇴하라고 후보를 보쌈하듯 싸고돌기부터 했다. 정작 후보 본인이 국감에 참석하겠다고 밝히면서 머쓱하게 됐다. 우군이 훨씬 많은 공간에서 마이크가 쥐어지는데 ‘승부사 이재명’이 왜 그걸 마다하겠나.
덜 싸고 덜 닦은 듯한 이런 모호하고 더러운 기분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수사가 제 속도를 내지 않아 더 그렇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설마 미래권력 눈치를 보는 건가, 아니면 아직도 지들이 나라를 쥐고 흔든다 여기고 숨을 고르는 건가, 원망이 온통 몰릴 순간에 그나마 문재인 대통령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한마디를 내놓았다. 민주당은 그 말을 둘러싼 해석 싸움으로 또 시끄러웠다.
수사기관은 모쪼록 ‘나라 걱정’일랑 접어두고 본분에 충실하기 바란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이참에 존재 이유를 증명하고, 검찰은 정치검찰이라는 오랜 업보와 오명을 만회하면 좋겠다. 경찰은… 하던 대로 잘하시길. 검찰이 못(안) 찾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휴대전화를 찾았듯이 말이다. 우리가 또 어떤 국민인가. 대형 범죄나 권력형 비리에 단련된 안목의 소유자다. 눈치 보는지 뭉개는지 혹은 거래하는지 장르별로 다 보인다. 후보 선출일이니 선거운동 기간이니 정치 일정 따위도 고려할 필요 없다. 누구든 죄 있으면 구속하고 기소하라. 억울한 누명이라면 벗기라. 대통령도 탄핵했는데 후보 교체가 대수겠는가. 세상은 넓고 후보는 많다. 누가 돼도 대통령 된다.
나도 본분에 충실할 생각이다. 멀게는 30년 이상, 가까이는 수년 동안 큰 틀에서 뜻을 같이해온 오랜 친구들이 이번에는 마음이 뿔뿔이 흩어졌다. (어차피 정의당 찍을 거니까) ‘니들끼리 잘 싸워봐’ 모드이던 몇몇조차 거기서 또 갈라졌다. 따지고 보면 처지와 경험이 다 다른 이들이 오랫동안 ‘원팀’이었던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이런 역사적이고 의미 있는 ‘창조적 해체’를 하필 갱년기 때 장 트러블에 시달리는 듯한 상태로 해야 한다는 게 좀 울적하긴 하지만 그게 또 인생이자 정치의 맛이니까.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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