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원. 월급쟁이로서 체감이 잘 안 되는 액수다. 피부로 느껴보고자 간단하게 산수를 해봤다. 올해 통계청이 발표한 임금근로자 월평균 세전 소득은 309만원(2019년 기준)이다. 이 평균적인 노동자가 1618개월 일하고, 1원도 안 쓰고 모으면 50억원에 도달할 수 있다. 1618개월은 135년이다. 인간의 평균수명보다 훨씬 긴 시간이다. 월급쟁이에게 50억원은 이처럼 상식적이지 않은, ‘다른 세상’ 이야기다. 이 다른 세상 이야기가 2030 청년은 물론, 직장인들의 멘털을 탈탈 털었다.
곽상도 의원은 31살 아들이 경기도 성남 대장동 개발 시행사인 화천대유에서 이른바 퇴직금 50억원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자, 발빠르게 국민의힘을 탈당했다. 대선을 5개월 앞둔 시점에서 국민의힘과 곽 의원이 ‘꼬리 자르기’식 대응을 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딸과 아들에 대해 줄기차게 특혜 의혹을 제기했던 곽 의원에게 ‘아빠 찬스’,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곽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대구 중·남구) 간판에는 ‘국민의힘’ 로고 대신, 조롱이 담긴 ‘아빠의힘’ 로고가 붙었다. 분노한 대구 청년들(대구경북대학생진보연합 등)이 벌인 퍼포먼스다.
곽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거나, 국회에서 곽 의원을 제명(본회의에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의원직 박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곽 의원이 스스로 사퇴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2021년 9월28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곽 의원은 아들이 받은 그 퇴직금 내지 위로금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의원직 사퇴를 선택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곽 의원은 ‘다른 세상’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은 추석 전부터 곽 의원 아들이 화천대유에서 50억원의 퇴직금을 받은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 사실이 들통나자 곽 의원 의원직 제명 카드를 부랴부랴 꺼내들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여야가 합의해 제명하자”며 제명 카드를 받자, 국민의힘은 대장동 특검과 의원직 제명을 연계하며 한발 빼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화천대유가 50억원이라는 거금을 준 대상이 실제로 곽 의원 아들이라고 보는 이는 많지 않다. 결국 곽 의원에게 대가를 바라고 준 뇌물인지, 곽 의원이 차명 투자를 통해 받은 배당금인지 등 50억원의 성격이 규명돼야 한다. 이재명 캠프와 전광훈씨가 이끄는 국민혁명당이 각각 검찰에,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곽 의원을 고발한 터다. 앞으로 수사를 통해 돈의 성격이 드러날 것이다. 또 화천대유가 사업 추진에 도움을 준 인사들에게 이익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대장동 50억 약속 그룹’이 있다는 SBS 보도도 나왔다. 50억 돈잔치는 곽 의원 아들에게서 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진행 중인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 수사는 수천억 불로소득이 가능했던 개발사업 구조와 화천대유의 배당금, 퇴직금 등 비상식적인 돈잔치의 전모를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이를 계기로 부동산 개발을 통해 막대한 불로소득을 얻는 ‘다른 세상’의 메커니즘을 끊어내기 위한, 여야 대선 후보들의 공약 경쟁도 활발해지길 기대한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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