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같은 여군은 죽어야겠습니다”
“모두가 절 죽였습니다.”
2021년 5월2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공군 성폭력 피해자 이예람 중사. 그의 휴대전화엔 성폭력 피해 신고 뒤 회유와 협박, 2차 가해를 겪었다는 내용의 유서 같은 메모가 있었다. 국방부는 이예람 중사의 사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나서야 호들갑을 떨며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2021년 10월 나온 최종 수사 결과는 허망했다. 부실 수사 책임자와 2차 가해자는 처벌 대상에 오르지 않았다. 유족이 군을 못 믿겠다며 특별검사 수사를 요구한 이유다.
특검팀은 이예람 중사가 숨진 지 1년이 지나서야 꾸려지고 있다. 6월 본격 수사를 앞둔 특검의 주요 수사 대상은 공군 내 성폭력, 군의 부실한 초동수사, 군의 사건 무마·은폐 시도 의혹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군이 특검 수사를 받는 건 창군 이래 처음이다. 폐쇄적인 조직문화가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만큼 군의 ‘사건 은폐 메커니즘’을 들여다볼 수 있기에 이번 특검은 중요하다. 특검에서 제대로 진상규명을 해야 제2의 제3의 이예람 중사를 막을 수 있다.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의 심각성은 군인권센터가 2022년 5월25일 공개한 연례보고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군인권센터가 2021년 현역 군인 등을 상담한 사례 1708건을 보면, 강제추행 등 성추행 상담은 83건으로 전년(44건)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성희롱 상담도 2020년 55건에서 62건으로 늘었다. 성폭행 상담은 17건이었다.
특히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이후 여군의 피해 상담이 크게 늘었다. 2021년 6~9월 넉 달 동안 여군의 피해 상담은 61건으로, 2020년 한 해 동안 상담을 의뢰한 여군 피해(62건)와 비슷하다. 2021년 여군 피해 상담은 95건이었다. 군인권센터는 “(피해 여군들이) 사건 해결 과정에서 2차 피해를 크게 호소하고 있어, 전반적인 군 내 문제 해결 시스템이 무너진 상황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군인권센터 부설 군성폭력상담소의 상담 건수도 매년 늘고 있다. 2021년 상담 건수는 866건으로, 전년(386건)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피해자는 여성이 83명, 남성이 117명이었다. 여성은 강제추행이 37명으로 가장 많았고 디지털성폭력(17명), 성희롱(15명), 강간·유사강간 등(14명)이 뒤를 이었다. 남성은 주로 강제추행(70명), 성희롱(39명) 피해를 봤다.
여군 대상 성폭력 사건의 경우 ‘계급 역전’ 현상이 도드라졌다. 군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는 선임·상급자(124명)가 가장 많았지만, 여군이 성폭력 피해자일 땐 가해자가 후임·하급자인 경우가 13건으로 남군(2명)의 6배가 넘었다. 여군 성폭력 피해 사건에선 계급뿐 아니라 성별 권력도 크게 작동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예람 중사의 주검은 장례를 치르지도 못한 채 국군수도병원 영안실에 안치돼 있다. 이 중사의 가족은 특검을 통해 딸이 남긴 메모의 진실이 밝혀지길 간절히 원한다. 그래야 “저 같은 여군은 죽어야겠습니다. 장아무개 중사(가해자)는 원인 제공을 했고, 군 조직과 주변의 시선은 저에게 압박감과 죄책감을 주었습니다”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또 다른 이예람 중사가 나오지 않을 것이므로.
장수경 <한겨레> 토요판부 기자 flying710@hani.co.kr
*뉴노멀: 이주의 주요 뉴스 맥락을 주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코너로 <한겨레> 김규남, 이승준, 장수경 기자가 돌아가면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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