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들이 매년 한 차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혐오와 차별에 맞서 연대의 목소리를 확인하는 축제 개최에 서울시가 ‘조건’을 달았다. 서울광장을 사용하겠다는 신청을 받은 지 63일 만에 내린 ‘반쪽 승인’은 ‘차별 행정’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서울퀴어문화축제(퀴어축제)가 서울시의 조건부 승인으로 2022녀 7월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다. 과도한 신체 노출이나 유해한 음란물을 전시하거나 판매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다. 신고제가 원칙인 서울광장 사용에 조건을 단 것뿐만 아니라, 조건 내용도 자의적이라 ‘성소수자에게만 허가제’ ‘독재정권처럼 치마 길이라도 잴 거냐’ ‘축제를 감시한단 얘기냐’ 같은 비판이 나온다. 광장 사용 기간도 애초 신청 기간보다 대폭 줄었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퀴어축제조직위)는 엿새(7월12~17일) 동안 광장을 사용하겠다고 신청했지만, 서울시는 7월16일 하루만 허가했다. 축제를 반대하는 시민과의 충돌 가능성 등을 이유로 들었다. 2000년에 시작한 퀴어축제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서울광장에서 열렸다가 2020년과 2021년엔 코로나19 탓에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이번 서울시 결정은 서울시가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광장운영위)에 광장 사용 허용에 대한 판단을 떠넘기며 나왔다. 서울광장 사용은 신고제가 원칙이라, 서울시는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따라 신고 접수 48시간 이내에 수리 여부를 통보해야 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2016년부터 매번 퀴어축제조직위 광장 사용 결정을 광장운영위에 미뤄왔다. ‘(서울광장) 조성 목적 위배’ 등 예외적 경우엔 광장운영위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예외규정을 적용한 것이다. 서울광장 조성 목적은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 공익적 행사 및 집회와 시위의 진행 등’이다. 광장운영위에 결정을 넘긴 건 서울시가 퀴어축제를 ‘차별에 맞서는 장’이 아닌 ‘퇴폐축제’로 본다는 뜻이다.
광장운영위는 매년 ‘퀴어축제조직위의 서울광장 사용이 조례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지만, 서울시의 판단 미루기는 5년째 되풀이됐다. 광장 사용 신고 접수→서울시, 광장운영위에 넘기기→광장 사용 허가가 반복되는 동안, 성소수자들은 서울시의 ‘차별’을 고스란히 마주하고, 자신의 존재 증명조차 허가받아야 했다.
서울시의 ‘성소수자 차별’은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시는 2021년 8월 퀴어축제조직위가 신청한 사단법인 설립도 불허했다. 불허 이유는 성소수자 존재 자체를 지우는 ‘차별’ 그 자체였다. 헌법에 혼인과 가족생활은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된다고 나왔기 때문에 성소수자의 평등 대우와 권리 보장을 목적으로 한 법인은 허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퀴어축제조직위가 행정심판을 내자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6월14일 서울시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단했다. 당연한 결과지만 우려는 남았다. 퀴어축제조직위가 법인 설립을 재신청하더라도, 서울시가 다른 이유를 들어 불허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서울시의 퀴어축제 승인이 마냥 반갑지 않은 건, 서울시가 혐오와 차별에 맞서기보다 ‘차별의 목소리’에 기대 특정 존재를 지우는 데 가담했기 때문이다. 정부나 지자체는 ‘그럴듯한 말’로 소수자를 거리와 일상에서 치우고 지우려 한다. 빈민이 그랬고, 장애인이 그랬다. 거리에서 ‘치워지는’ 다음 순서는 어쩌면 또 다른 소수자인 당신일 수 있다.
장수경 <한겨레> 토요판부 기자 flying710@hani.co.kr
*이주의 주요 뉴스 맥락을 주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코너로 <한겨레> 김규남, 이승준, 장수경 기자가 돌아가면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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