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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만에 ‘공식화’된 지옥 [뉴노멀]

등록 2022-08-27 03:04 수정 2022-08-27 08:53
2022년 8월24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사무실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소속 피해자들이 정근식 위원장의 발표를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2022년 8월24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사무실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소속 피해자들이 정근식 위원장의 발표를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지옥에서 나온 사람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2013년 제975호), 국가가 낳은 ‘생지옥’의 진실(2013년 제984호), 아직도 ‘생지옥’에 살고 있다(2014년 제1032호), 국회 앞에 멈춰선 형제복지원 31년(2018년 제1229호), 그때 도망쳤다면 달라졌을까요(2019년 제1245호), 8310…, 저는 번호로 불렸어요(2019년 제1245호).

<한겨레21> 과월호와 누리집에서 ‘형제복지원’을 다룬 기사나 칼럼을 찾아보면 나오는 제목들이다. 지옥, 국가, 국회…. 형제복지원의 열쇳말이다. ‘부랑아 관리’란 이름 아래 어린이까지 강제로 끌고 와서 구타·가혹행위·성폭력 등을 자행한 형제복지원은 현실에 실재하는 ‘지옥’이었다. ‘국가’는 지옥을 비호했다. 형제복지원 안의 인권침해를 알았으나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고, 묵인하고, 활용했다. 1987년 형제복지원생들은 퇴소한 뒤 여기저기 흩어져 스산한 삶을 살았다. 부랑아로 낙인찍힐까 ‘피해자’라는 말도 대놓고 할 수 없었다. 1984년 9살에 형제복지원에 끌려간 한종선씨가 2012년 ‘국회’ 앞에서 1인시위를 하며 피해자들의 존재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지옥을 방치한 국가와 국회의 잘못에도 이들은 계속 ‘비공식 피해자’란 이름표를 뗄 수 없었다.

2022년 8월24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국가기관으로는 처음 이들에게 붙은 ‘비’라는 한 글자를 떼줬다. 형제복지원 퇴소 뒤 35년 만이다.

진실화해위는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은 공권력이 부랑인으로 칭한 시민들을 강제 수용해 강제노역, 폭행, 가혹행위, 사망, 실종 등 중대한 인권침해를 발생시킨 사건”이라며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라고 분명히 했다. “국가는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피해 회복과 트라우마 치유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정부에 권고했다.

기존에 알려진 사망자 수는 552명이었는데 진실화해위가 처음으로 확보한 사망자 통계와 명단 등을 종합한 결과 105명이 늘어난 657명으로 확인됐다. 형제복지원 수용자에게 정신과 약물을 투약해 의학적으로 통제한 정황도 드러났다. 1년간 342명이 매일 두 번 복용할 수 있는 정신과 약물 클로르프로마진(조현병 환자의 증세 완화제) 25만 정을 형제복지원이 구매한 내역도 발견됐다. 실제 정부와 군이 형제복지원을 ‘관리’하고, 활용했던 정황이 담긴 문건도 확인됐다.

그러나 이를 책임지고 사과해야 할 당사자인 박인근 원장과 전두환씨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지연된 정의’에 국가는 사과하고 필요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형제복지원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연생모(53)씨는 진실화해위의 기자회견에서 호소했다. “저희들이 가장 시급한 게 트라우마 치료입니다. 트라우마 치료 좀 할 수 있도록 길 좀 열어주십시오. 지금 몸이 마비가 오고… 미치겠습니다. 형제복지원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이 꼭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한겨레21>의 기사 제목은 앞으로 바뀔 것이다. 바뀌어야 한다. ‘지옥’이 아니라 ‘국가의 사과’ ‘안식’ ‘해방’ 등의 열쇳말로.

이승준 <한겨레> 이슈팀장 gamja@hani.co.kr

*김규남·이승준·장수경 <한겨레> 기자 3명의 ‘뉴노멀’은 이번호로 끝납니다. 새로운 얼굴로 몇 주 뒤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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