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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 폐지 시점은요

등록 2021-07-10 04:03 수정 2021-07-10 11:46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한겨레 신소영 기자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한겨레 신소영 기자

대통령선거는 미래지향적인 선거다. 정치 지도자가 나라를 앞으로 이끌고 나아갈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국민의힘 일부 대선 후보는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승민(왼쪽 사진) 전 의원은 7월6일 페이스북에 “여성의 건강과 복지는 보건복지부가, 여성의 직장 내 차별은 고용노동부가, 성범죄와 가정폭력 등은 법무부와 검찰, 경찰이 담당하면 된다. 대통령 직속으로 양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고 각 부처의 양성평등 정책을 종합 조율하겠다”며 여성가족부(여가부) 폐지 공약을 발표했다. 하태경(가운데 사진) 의원도 같은 날 당내 청년 정치인 모임에서 “여가부가 ‘젠더갈등조장부’가 됐다. 여가부를 폐지하고 대통령 직속으로 젠더갈등해소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준석(오른쪽 사진) 대표도 같은 날 SBS 인터뷰에서 “대선 후보가 되실 분은 여가부 폐지 공약은 제대로 냈으면 좋겠다”고 거들었다.

여가부는 2001년 여성부로 신설됐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통령 소속으로 설치한 여성특별위원회를 정부 부처로 격상시켰다. 이로써 여성부 장관이 법률안 발의권과 국무회의 의결권을 행사하는 등 조직과 기능, 인력, 예산이 강화됐다. 여성부는 복지부로부터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자 보호 등의 업무를, 노동부에서는 일하는 여성의 사무 등을 이관받았다. 이후 2005년엔 여성가족부로 확대·개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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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흐름을 볼 때, 여가부의 주요 역할을 다른 부처에 나눠주고, 대통령 직속으로 관련 위원회를 신설하는 방식으로 여가부를 폐지하자는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의 공약은 여가부를 2001년 이전 위원회 상태로 되돌려놓자는, ‘퇴행’이다.

퇴행의 이유는 뭘까. ‘이남자’(20대 남성 유권자) 득표 전략으로 읽힌다. 유 전 의원이 “(여가부를 폐지하고) 타 부처 사업과 중복되는 예산은 의무복무를 마친 청년들을 위해 쓰겠다”고 밝힌 것은 그런 의도를 숨기지 않은 것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젠더 이슈에 민감한 ‘이남자’로부터 72.5%(국민의힘 전통적 지지층인 60살 이상 남성 지지율 70.2%보다 높음)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달콤한 승리’를 맛봤고, 대선에서도 이 지지가 재연되길 바랄 것이다.

물론 여가부를 비판하는 여론도 있다. 그러나 이는 여가부가 성찰·분발하는 계기로 삼아야지 폐지 근거로 삼을 일은 아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021년 3월 발표한 ‘글로벌 젠더 격차 2021’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156개국 중 102위로 젠더 격차가 매우 높은 나라로 나타났다. 또 2019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은 젠더 임금 격차(32.5%) 1위를 차지했다. OECD 평균은 13%다. 그만큼 한국 사회의 젠더 불평등이 심하다는 얘기다. 현실이 이러하기에, 국민의힘 내에서도 대선 주자인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윤희숙 의원, 최고위원인 조수진 의원은 여가부 폐지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서전(삼인·2010년)에서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여성부 현안을 챙겼다. 다른 부처 관리들은 여성부를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늦게 태어난 막둥이를 보살피듯 했다”고 적었다. 여가부가 최약체 정부 부처인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젠더 불평등 해소 의지를 갖고 여가부에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김 전 대통령은 또 “역설이지만 여성부는 ‘여성부가 없어지는 그날’을 위해 일하는 부서”(<김대중 자서전>)라고 밝혔다. 그의 말처럼 여가부 폐지 시점은, 젠더 평등이 실현돼 더는 할 역할이 없어질 때다. 지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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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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