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당권 투쟁을 기대했건만 당에서 손절당하는 거 아닐까 염려해야 할 판이다. 20대 남성들의 박탈감을 강변하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여성할당제와 가산점 일반을 공격하는 발언을 이어가자 당에서도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그도 이를 인지했는지 결코 ‘여성 혐오’를 한 게 아니라며 허공에 삿대질한다. 그의 당사자성을 존중해온 편이었는데, 2030 남성을 대표하려는 의욕이 지나쳐 그만 시야가 터널에 갇히고 만 것 같다.
당장 내가 너무 힘들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화풀이하게 된다. 어느 정도는 인지상정이다. 젠더 갈등은 여기서 비롯된 면이 크다. 살인적인 경쟁 탓에 바로 옆에서 뛰는 이들만 보이는데, 그들 모두 나보다 편하고 유리한 것 같다. 불안과 분노가 엉킨다. 이런 판을 만든 건 누구인가 하는 원망이 몰린다. 정치적으로 잘 풀어내면 훌륭한 동력이지만 잘못 풀어내면 질 나쁜 선동에 그치고 만다. 특정 집단의 절박한 처지와 바람을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방식은 정확하고 신중해야 한다.
이 와중에 이재명 경기도지사①가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을 했다. 이 지사는 4월28일 가상화폐 투자 열풍에 대해 말하는 중 “(지금 청년 세대는) 단 한 번의 기회를 갖기 위해서도 동료들, 친구들, 또는 여자사람친구와 격렬하게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에게 청년은 곧 남성인가. 누락되고 배제돼온 ‘여자사람들’의 존재감은 이렇게 청년의 ‘경쟁자’로 호명되면서야 비로소 드러나나. 실수한 건지 기본 인식이 그러한지 아무런 해명이 없다. 이 지사의 태도가 그리 유별난 게 아니라는 점에서 나도, 당신도, 멀쩡히 잘 살아내고 있다는 위로와 격려를 새삼 하고 싶다.
일부 20대 남성의 불만과 달리 더불어민주당은 여성주의적이었던 적이 없다. 친화적이기는커녕 의식조차 없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란 립서비스와 “피해자님이여!”로 대표되는 퍼포먼스만 있었을 뿐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권력형 성추행에 대해 민주당은 사실상 2차 가해를 오랫동안 방조하고 오히려 조장했다. 최근 최다득표로 최고위원이 된 김용민 의원②을 비롯해 많은 이가 대놓고 “무고” 운운했다. 이런 모습을 줄곧 접하면서 나는 민주당에 ‘정서적 학대’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일까.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선 제일성으로 “피해자를 잘 챙기도록 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울컥했다. 처음으로 들어본 ‘책임 있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오 시장은 피해자 의사를 확인한 다음 다시 날 잡고 각 잡아 제대로 사과했다. 서울시 차원의 2차 가해를 인정하고 관련자를 인사 조치했다. ‘원스트라이크아웃’이라는 재발 방지 대책도 내놓았다. 당연한 일이 참 오래 걸렸다.
민주당은 무엇을 했나. 다른 의원들은 차치하고라도 여성 대표성을 지닌 의원들은 무엇을 했나.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부른 것 외에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낸 일이 없다. 김상희 의원을 여성 최초 국회 부의장으로 만들자고 연판장 돌릴 때는 단합된 힘을 보이더니 왜 이 일에는 그리도 미온적이었을까. 일부는 퇴행적인 행태마저 보였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기간 고민정 의원은 지지자를 껴안고 우는 사진③과 책상에 엎드려 쪽잠 자는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민망함을 넘어 모욕감을 느꼈다. 동정심을 자극하는 홍보가 아니라 정치를 했어야 한다. 필요한 건 얄팍한 호소나 쇼가 아니라 정직한 판단과 책임 있는 설득이었다. 여성 의원에 대한 ‘이중구속’이라는 항변은 사양하겠다. 대권 주자의 공적 발언에서조차 누락되고 배제되는 수많은 여성이 땀과 눈물과 피로 싸워 이뤄낸 정치적 지분을 그를 비롯한 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그러고 보니 박원순 전 시장의 성비위에 대해 민주당 차원의 제대로 된 사과를 들은 일이 없다. 아직도 말이다. 오세훈만큼 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가.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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