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문재인 정부 4년] 국정 이슈 삼킨 ‘검찰 개혁’

인물이 개혁 상징 될 때… 공수처 등 이뤘지만 장관-총장 갈등에 여론 쪼개져
등록 2021-03-13 12:04 수정 2021-03-18 01:50
2021년 1월21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오른쪽 둘째)이 참석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1년 1월21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오른쪽 둘째)이 참석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정부 4년 개혁의 여정을 돌아본다. 때로 오해받았고, 때로 갈등에 휩싸였고, 때로 믿음을 잃었다. 틀짓기(프레이밍)의 문제일 때도, 어긋난 전선의 문제일 때도, 신뢰를 구하는 방식과 주체의 문제일 때도 있었다. 흔들렸다. 흔들림은 어김없이 문재인 정부 사람들의 흔들림과 겹쳤는데, 공교로운 일 같기도 자연스러운 일 같기도 했다.
이제 ‘문재인 정부’를 빼고. 그저 2017~2021년 개혁의 여정을 생각한다. 틀짓기의 실패, 어긋난 전선, 신뢰 상실은 현실 앞에 선 모든 개혁의 고민거리다. 앞선 5명 대통령(민주화 이후) 모두 개혁을 말했고 비슷한 고민에 휩싸였으나, 누구도 성공을 말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다음 대통령, 그다음 대통령 또한 현실 앞에 비슷한 일을 겪을 터다.
여정의 시작, 개혁과 사람에 얽힌 세 번의 변곡점 그리고 지금을 짚는다. 사소한 것 같기도, 잘 수습한 것 같기도 했는데 돌아보니 아쉬운 순간들이다. 아쉬움을 곱씹는 일은, 1년 남은 정부를 향한 뒤늦은 힐난도 무의미한 체념도 아니다. 개혁의 여정은 한 정부의 여정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길고, 기니까. 정부에는 임기가 있어도 개혁에는 기한이 없으니까. _편집자주

*표지이야기 2부 - [문재인 정부 4년] 개혁은 인사로부터…사라진 ’소득주도성장’에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0089.html

2019년 3월만 해도 검찰 개혁은 다수가 공감하는 의제였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에 찬성한다는 답변이 82.9%에 육박했다.(한국사회여론연구소) 그러나 2년여 만에 ‘검찰 개혁’은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단어가 돼버렸다. 2021년 2월 <한겨레21> 온라인 심층 여론조사 결과, 검찰 개혁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평가(41.8%)와 잘못하고 있다는 평가(48.8%)로 반으로 쪼개졌다. 1년 반에 걸쳐 검찰 개혁이 인물 간 갈등으로 치환된 게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100대 국정과제 13번째 과제(권력기관 개혁)였던 공수처를 설치하고, 검경 수사권 조정안(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는 소기의 성과에도 검찰 개혁 과제가 빛바랜 이유다.

꿈같은 희망에 그친 2019년

통상 문제 개선 방법은 두 가지다. 제도 개선과 인적 쇄신. 정권 초기 적폐 청산 수사를 검찰 특별수사부(특수부)에 맡기면서 인적 쇄신의 기회를 놓쳤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특수부 출신으로, 검찰의 직접수사를 강조해왔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2017년 5월)에 이어 “조직 논리보다는 국민 눈높이가 중요하다”고 당부하며 그를 검찰총장에 임명했다(2019년 7월). 물론 첫 번째 국정과제인 적폐 청산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2019년 9월9일 조국 법무부 장관이 임명되면서 갈등에 불씨는 붙었다. “검찰 인사와 관련해 정권 초기 2년여간 검찰권을 오·남용해온 주체들에 인사상 불이익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칼을 쥐여줬다. 그 정점이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더군다나 민정수석 당시 검찰권 오·남용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던 검찰 직접수사와 관련한 권한과 기능에는 손대지 않았던 인물이다.”(양홍석 변호사·전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언론은 조 장관 임명에 ‘강행’이라는 두 글자를 덧붙였다. 조국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에 내정되고, 검찰이 장관 후보자 수사에 착수한 뒤였기 때문이다. 사모펀드, 자녀 입시 비리, 사학재단 웅동학원 비리 의혹을 거쳐 인사청문회 당일 자녀의 표창장 위조 혐의로 그 배우자가 기소됐지만, “임명 찬성과 반대의 격렬한 대립”에도 “명백한 위법행위가 발견되지 않았고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로 남을 수 있다”고 문 대통령은 설명했다. “저를 보좌하여 저와 함께 권력기관 개혁을 위해 매진했고, 성과를 보여준 조국 장관에게 그 마무리를 맡기고자 한다는 발탁 이유를 분명하게 밝힌 바 있다.”(2019년 9월9일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장 수여식)

127일간의 조 전 장관 수사에는 권력형 비리에 투입되는 특수부 검사들이 나섰고 자택을 포함해 70여 건 압수수색이 진행됐다.(2020년 5월 참여연대 ‘문재인 정부 3년 검찰보고서’) 전례 없는 과단성과 신속성에 과잉 수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동시에 공정·공평이라는 가치가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조 장관 임명 뒤 직접 발언을 삼가던 문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그러나 메시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검찰 개혁의 요구가 높아지는 현실을 성찰해야 한다”(9월27일)고, “검찰권 행사의 방식이나 수사 관행, 조직문화에 있어서 개선이 부족하다”(9월30일)고 했다. 나흘 동안 연이어 두 차례 검찰에 경고를 보낸 것이다.

조 전 장관 수사는 개혁에 대한 검찰의 조직적 반발이라는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조 전 장관은 검찰 개혁의 상징으로 바뀌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 개인의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조 전 장관을 둘러싼 사태가 법의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수사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비난과 그 수사에 대한 정당성과 적법성에 대한 비난이 동시에 쏟아졌고, 그 한 사람에게 모든 개혁의 어젠다와 정권의 정통성까지 부여됐다.”(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결국 취임 35일 만에 조 장관이 사퇴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처럼 검찰 개혁을 향한 조국-윤석열의 조화는 “꿈같은 희망”이 돼버렸다. “저는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환상적인 조합에 의한 검찰 개혁을 희망했습니다. 꿈같은 희망이 되고 말았습니다.”(2019년 10월14일 수석보좌관회의 머리발언)

서초동-광화문으로 양분된 여론

게다가 여론은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양분됐다. 돌이켜보면 정치권 입장에서는 힘들이지 않고 지지자를 결집할 수 있는 기회였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 인물 간 갈등 외에 지지자들을 결집할 수 있는 의제는 없었다. 2019년 12월과 2020년 1월 공수처 법안(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이어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검찰 개혁을 위한 입법이 개혁 1단계라고 한다면, 이 시점에 1단계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보고 2단계를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이어진 인물 간 갈등 구도, 이를 부추기는 정치권의 발언들은 2단계 논의는 물론 다른 국정 이슈마저 집어삼켰다.

검찰 개혁의 초점은 한 인물을 수호하고 또 다른 인물을 몰아내는 방향으로 왜곡됐다. 2020년 1월 추미애 법무부 장관 취임 이래 1년여 이어진 추-윤 갈등은 그 연장전이다. 추 장관은 2020년 11월24일 검찰총장을 대상으로 한 초유의 징계 청구, 직무 배제를 단행하며 말했다. “제도와 법령만으로는 검찰 개혁이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도 절실히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징계 청구→대통령 재가→윤 총장의 불복으로 행정소송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징계위원회가 의사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고 기피신청을 의결하는 등 절차적 흠결이 발생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채동욱 검찰총장 때는 임기제를 강조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권력기관 개혁은 국민 설득과 함께 가야 하는 일인데 상황에 따라 다른 메시지를 내놓고 합당한 설명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정치의 언어로 풀어내야 할 문제였으나, 문 대통령은 인사권자로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나중에 소회를 밝혔을 뿐이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마치 개인적 감정싸움처럼 비쳤던 이런 부분까지 좋았다는 것이냐, 저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반성할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또는 검찰 사이의 검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문민 통제를 하기 위한 갈등이 때때로 생길 수 있고 민주주의 일반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2021년 1월18일 새해 기자회견) 그러나 법무부의 검찰 지휘감독권에 대한 국민 통제를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논의해야 했지만, 두 기관의 협의·협력 과정은 갈등과 대립의 소동으로 바뀌어버렸다.(2020년 5월 참여연대 보고서)

변수 만난 검찰 개혁 2단계

더불어민주당은 2단계 검찰 개혁으로 검찰이 맡은 6대 범죄(부패·경제·선거·방위사업·공직자·대형 참사)까지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해 수사권을 모두 넘겨받으려 했지만, 윤 총장이 정치 행보를 암시하고 사퇴하면서 또 다른 변수가 생겼다. 개혁 대상으로 소환되던 인물이 대권 주자로 올라선 아이러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표지이야기 2부 - [문재인 정부 4년] 임기는 유한하나 개혁엔 기한 없다 기사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0098.html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