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필 경기도지사가 3월7일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왼손을 불끈 쥐고 있다.
그는 실패한 적 없는 정치인이다. 남경필. 1965년생. 제34대 경기도지사. 1998년 7월 33살에 국회의원이 됐다. 부친 남평우 전 의원이 별세한 해였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재·보궐 선거에서 당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다. 석 달 전까지만 해도 미국 유학 중이던 남경필은 장례식 뒤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인생의 진로를 바꿨다.
그는 당시 7개 선거구 재·보궐 선거에서 ‘최대 이변’을 만들어냈다. 당시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 박왕식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그때부터 내리 5선(15~19대)을 했다. 새누리당 5선 중진 의원인 그는 2014년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하지만 정치인에게 이렇다 할 역경이 없는 건 약점이기도 했다.
남경필이 택한 길은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내 ‘비주류’였다. 50대이자 5선 중진 의원인 그의 이름 앞엔 여전히 ‘소장파’라는 단어가 붙는다. 당에서 ‘젊고 개혁적’ 의견을 견지해온 이미지는 그의 자산이다. 남경필은 당내 비주류의 길을 걷게 된 배경을 자신의 성정에서 찾았다.
직접적 계기는 2002년 찾아왔다. 당시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에서 패배했다. 이듬해 12월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대기업들로부터 수백억원을 트럭째 건네받은 정황이 드러나 ‘차떼기당’이란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한나라당은 또다시 역풍을 맞았다.
그는 여당 국회의원으로서 직언도 마다하지 않았다.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그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한나라당 의원을 만나러 경북 포항에 내려갔다. 이상득 전 의원은 총선 재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이 전 의원에게 ‘개혁 공천’을 주장하며 출마를 말렸다. 그는 정두언 전 의원 등과 이 전 의원 공천을 반대하는 ‘55인의 반란’ 사건을 주도했다.
그 일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2010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민간인 사찰’ 사건에서 남 지사의 부인이 사찰 대상에 올랐다. 그는 “이상득 의원과 권력 집중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사찰이라는 정치적 보복을 겪었다”()고 봤다. 민간인 사찰 사건 1년 뒤 그는 보수가 최악의 위기에 빠져 있다고 썼다.
“보수는 자신의 본분을 망각했다. 대한민국 보수는 스스로의 본분을 망각하고 진보의 ‘안티’ 놀음에 빠져 최악의 위기에 놓였다. 진보가 무엇을 하건 내버려두라. 그리고 보수는 스스로의 길을 걸어야 한다.”()권력의 새로운 형태
남경필이 말하는 보수의 본분이란 뭘까. 와 에는 한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등장한다. 연세대 사회사업학과 3학년 재학 당시 서울 아현동 빈민가에서 자원봉사할 때 만난 아이다. 그는 그곳에서 ‘가난하다는 것’의 실체를 목격했다.
산동네 판자촌에 있는 쓰러져가는 낡은 주택, 중풍에 걸린 할머니, 집 안에 풍기는 대소변 악취,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다 산업재해로 누워 지내는 아버지, 술집에서 일하며 밤마다 술에 취해 들어오는 어머니, 그리고 항상 눈동자에 초점이 없는 어린 딸. 남경필이 그 학생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동안에도 욕설과 주먹질이 난무하는 부부싸움이 벌어졌다. “그럴 때조차 태연한 그 학생의 표정이 그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아직도 나는 가끔 그 아이 소식이 궁금해진다. 흙수저니 금수저니 자조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빈부 격차도 심해져서 노력만으로는 도저히 잘살 수 없다고 너나없이 자조하는 지금, 사십 대에 접어들었을 그 아이는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 어디선가 잘살고 있을까?”()
“대물림되는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일까? 누구나 한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삶의 질은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교육에 주목했다. 그의 대표 공약도 교육이다. ‘국민투표를 통한 사교육 폐지’를 1호 공약으로 내놨다.
“사교육은 가정경제나 국가경제적으로 엄청난 기회비용의 손실이며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제약한다.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되어야 할 교육이 사교육으로 인해 신분 세습의 도구로 전락해버리는 측면도 있다.”()
교육은 고용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다. 그는 보수의 본분이 ‘일자리’라고 쓰기도 했다.
그는 경제개혁이 안정적 정치 구조에서 가능하다고 봤다. 독일 사회민주당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2002년부터 추진한 ‘하르츠 개혁’에서 영감을 얻었다. ‘노동유연화’가 핵심인 하르츠 개혁은 현재까지도 독일에서 노동자의 희생을 담보로 눈에 보이는 국가 경제지표를 개선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반대쪽에선 독일이 경제강국으로 살아남은 비결로 하르츠 개혁을 칭송한다. 남 지사는 하르츠 개혁이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연속 추진된 배경에 주목했다. 그는 경기도지사 당선 뒤 야당과 연정해 도 행정을 이끈 경험이 있다.
“경기도지사에 뜻이 없다니까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그럼 뭘 할 겁니까?’ 저는 대답했습니다. 하나로 귀결됩니다. 정치 구조를 바꾸는 일로. 몇몇 인터뷰에서도 밝힌 바 있듯이 저의 관심은 ‘경기도지사’라는 자리 자체보다는 ‘우리나라의 정치 구조를 바꿔나가는 것’에 있습니다.”()끝나지 않은 과거
평탄한 정치 인생을 걸어온 남경필에게도 오점이 있다.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남경필도 정치인 박근혜의 성장에 기여했다. 박근혜는 2004년 3월 한나라당 당대표로 선출됐다. 그도 당대표에 출마한 박근혜 당시 의원을 지지했다. 박근혜 대표는 2년3개월 재임 동안 ‘선거의 여왕’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가 이끈 한나라당은 2004년 6월과 2005년 4월 재·보궐 선거에서 여당 열린우리당에 압승했다.
소장파는 새로운 당의 얼굴로 박근혜 의원을 지지하기로 했습니다. ‘박근혜 의원을 지지합시다. 박근혜 의원은 정치 개혁을 주장하며 이회창 총재에게 바른 소리를 하고 탈당을 했을 정도로 정치 개혁 의지가 있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보수층에서도 지지도가 있습니다. 그런 박근혜 의원이 당대표로서 개혁을 주도해나간다면 당내 극우나 보수층에서도 저항하지 않을 것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박근혜와 약 20년간 같은 당에 몸담은 남 지사도 당을 떠났다.
박근혜 파면과 그의 탈당은 어쩌면 그의 정치 인생에 닥친 최초의 실패 경험일 것이다. 그는 저서 의 제목을 미국 작가 윌리엄 깁슨의 말에서 따왔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과거도 마찬가지다. 과거는 아직 남아 있다. 단지 기억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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