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을 ‘통일의 심장’이라고 불렀던 이들은 이제 죽고 없다. 하지만 여전히 개성공단이 통일의 혈관이(될 수 있으)며, 대북 정책의 핵심이란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주까지는 확실히 그랬다. 물론 보수정부 이후 한반도 정세에 따라 개성공단의 존폐가 자주 경각에 흔들리곤 했다. 하지만 그걸 처음 만들었던 대통령의 별명이 ‘인동초’였기 때문일까, 위태로움들은 흔들리다 이내 제자리를 잡곤 했다. 개성공단이 있는 한 남북관계가 갈지자를 걸을지언정 끝내 역진하진 않을 것 같다는 소박한 믿음도 꽤 오래 유지됐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끝내 그 믿음을 박살냈다. 2월11일을 기점으로 개성공단의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이명박 정부의 금강산 관광 중단이 그나마 이유라도 있었다면, 박근혜 정부의 일방적이고 단호한 개성공단 폐쇄는 당최 당혹스럽다. 그런 생각만 든다. 누군가는 갓 쓰고 자전거를 탈 수 있고, 어떤 이는 목욕물 버리려다 아이까지 내다버릴 수도 있다. 맞다. 누군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멍청하며, 어떤 이들의 아둔함은 수치스러울 정도로 참혹한 문제일 수도 있다.
시계를 3년 전 이맘때로 돌려보자. 북한은 갓 출범한 박근혜 정부를 ‘괴뢰패당’이라고 힐난했다.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불신과 불확실성만이 동아시아 정세를 지배할 무렵이었다. 북한은 정전협정 폐기를 선언했고, 핵실험을 강행했으며, 실전 미사일을 배치했다. 외신들은 곧 한반도에 일촉즉발의 상황이 발생할 것처럼 떠들어댔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의외로 차분했다. 두 가지 정도의 이유를 꼽을 수 있다. 우선,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대북 기조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였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과는 분명 결을 달리하는 기조였다.
또 한 가지,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을 앞세웠다. 갓 출범한 정부의 대북정책 담당자들은 김정은 체제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행보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불과 50여km 떨어진 곳에서 여전히 공단이 유지되고 있는데 설령 무슨 일이 일어나겠느냐는 논리로 안심을 촉구했다. 김정은 체제가 도발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 한반도의 전쟁 위협이 실질적인 것 아니냐는 의문을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으로 막았다. 당시, 북한은 개성공단을 언제든 폐쇄할 수 있다고 협박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은 “남조선 괴뢰패당과 보수언론이 못된 입질을 계속하면 개성공업지구에서 우리(북한) 근로자들을 전부 철수시키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개성공단에서 북쪽이 갑자기 철수할 수 있단 긴장감이 팽배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는 임기 중 거의 유일했던 ‘전략적 인내’를 발휘하며, 161일간의 줄다리기 끝에 5개 문항으로 이뤄진 합의문을 발표하고, 개성공단을 지켜냈다. 당시 합의문의 1항은 “남과 북은 통행 제한 및 근로자 철수 등에 의한 개성공단 중단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남측 인원의 안정적 통행, 북측 근로자의 정상 출근, 기업 재산의 보호 등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주목할 만한 표현인 ‘정세의 영향 없음’은 우리 쪽의 요구를 북한이 받아들여 넣게 된 것이다. 3년 전 개성공단은 불안한 정세의 희생양이 될 수 있었던 박근혜 정부를 구한 ‘산소호흡기’였다. 그 중요한 담보물을 스스로 내던진 박근혜 정부는 이제 무얼 할 것인가. 철책 너머의 저들처럼 싸우자고 할 텐가, 아니면 정말 세간의 의구심대로 총선에서 이기기만 하면 그뿐인가.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평화란 게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그게 흐트러지면, 그 밖의 다른 모든 사회적 가치들은 절대 보장되지 않는단 점이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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