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감행한 3당 합당 이후, 한국 정치가 오가는 알파와 오메가 사이는 ‘3.5 대 2.5 대 0.5’가 아닐까 싶다. 가감이 있긴 하지만 민주자유당의 계보를 잇는 정당이 35%를, 민주당의 계보를 잇는 집단이 25%를, 그리고 색깔이 분명한 진보 정당 운동을 벌여온 이들이 5% 안팎의 고정 지지세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삼자를 합산하면 대략 65%의 점유율이다. 그리고 35% 안팎의 나머지가 존재한다.
그 35%를 부르는 방식은 다양하다. 평범하게 부를 때는 ‘무당파’다. 3당이 갖고 있는 진성 당원 수를 감안하면 사실상 우리는 모두 무당파다. 그래서 정확할 수 없는, 무의미한 표현이다. 어떤 여론조사들이 거짓말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조금 호들갑스럽게 부를 땐 ‘중도층’이라고 한다. 언론과 전문가들이 애용한다. 두터운 미지수가 있다고 가정하곤, 이를 풀어가는 양쪽의 셈법을 전하는 방식이다. 역시 딱히 마땅한 것이 없을 때 내뱉는 ‘아무거나’ 같은 주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여당과 야당 모두 속절없이 반응한다. 선거 때만 되면 가운데로 정말 가운데로 돌진해가겠(다고 선전한)다.
그리고 선거가 임박해 뭔가 급박해지면 ‘부동층’이 호명된다. 양쪽이 점하는 지지세는 불변이지만, 변수가 있어야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접두사와 함께 사용된다. 그래서 1992년 이후의 선거들은 대체로 ‘집토끼 사수, 부동층 공략’의 경연장이었다. 선거 때만 되면 새누리당이 좌클릭을 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이 우클릭을 하는 이유다. 미지의 영토, 가운데로의 땅따먹기 게임이다.
태초에 안철수는 무당파였다. 그에 대한 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때,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는 ‘평생 직업이 뭔지 모르겠다’며 너스레를 떨곤, 정치엔 초연한 ‘샌님’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연출했다.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는 사람들을 향해 “운이라는 건 기회와 준비가 만나는 것”이란 알 듯 말 듯한 말만 던지며 1년을 버텼다. 그러곤 소속 없이 정치를 시작했다. 그는 “국민의 반을 적으로 돌리면서 통합을 외치는 것은 위선”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을 기준점으로 좌우를 모두 위선자로 모는 중도의 전략이었다.
무당파와 중도노선, 그 모호하고 추상적인 영토에서 그는 알다시피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했다가 바로 양보하고, ‘생각’을 밝히며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단일화를 하네 마네 하다 갑자기 후보를 사퇴해버렸다. 제1야당은 그의 노선을 따라 오랜 이름을 버리고 ‘새정치’를 당명에 넣으며 그를 영입했다. 하지만 그는 돌연 ‘탈당’을 감행했다. 졸저 를 공저했지만, 정말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하는 정치가 ‘새정치’라고 셀프 선언될 줄은 몰랐고, 제1야당을 이렇게 사실상 ‘먹어버릴 줄’도 정말 몰랐다. 그리고 내버릴지도.
정치는 승패의 게임이다. 무당파이건 중도 공략이건 부동층 흡수이건 선택의 룰만 작동한다. 128석에 이르는 정당의 간판으로 지난 2년간 정치인 안철수가 보여준 게 뭔지 도통 생각이 나질 않는다. 10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선거에서 그가 몸담았던 야권이 참패한다면, 그 책임의 절반은 그의 몫이기도 하다.
혹시, 그는 다시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일까. 그가 만든 불세출의 프로그램 V3 백신에는 ‘포맷’ 기능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현실 정치의 기억은 그렇게 ‘딜리트’되는 것이 아니다. 안타까운 것인지 답답한 것인지 한심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자신이 깨버린 것이 뭔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 안철수의 새정치가 아니라 ‘새’철수의 ‘안’정치가 되어버렸다는 싸늘함, 그게 가운데로 가면 피해지는 것일까.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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