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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산수, 너무 쉽다

선거의 여왕과 선거 부정
등록 2015-10-20 21:52 수정 2020-05-03 04:28
컴퓨터 그래픽 김민하

컴퓨터 그래픽 김민하

‘선거의 여왕’이라고 불렸던 대통령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정국의 불쏘시개로 쓰고 있다. 기대대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시작부터 주체사상이 호명당한 상황은 이 화염의 마지막 발광이 무엇을 태울 것인지를 암시한다. 선거는 이제 6개월도 남지 않았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한 여론 지형은 얼핏 팽팽해 보인다. 각기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 결국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한다면 그건 옳고 그름의 판단이 아닌 진영의 선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려울 때마다 그것을 조직해냈고, 대체로 승리해왔다.

콘크리트처럼 탄탄한 대통령의 지지층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비교적 명확하다. 하지만 느닷없이 화공을 당한 그 반대 진영은 허둥댈 수밖에 없다. 부모 된 입장에서 입시를 통과해야 하는 자식이 더 단출한 선택지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민주적 체제를 지지하지만 그래도 애국심만큼은 다소 특별해도 되지 않느냐는 어떤 마음도 한국 사회에서 특별한 건 아닐 테다. 우리 편은 묶어두고, 상대편은 분할해 격파하는 통치의 효과가 선거에서 어떤 결과 값을 기록할지를 예측하는 건, 별로 어려운 산수가 아니다.

분할 통치 전략은 그야말로 박근혜 대통령의 ‘위닝샷’(winning shot)이다. 통합진보당 해산, 무상보육 문제, 노동개혁에 이르기까지 박근혜 대통령은 고비 때마다 확고한 피아 구분을 노림수로 하는 분할 통치 전략을 구가해왔다. 옳고 그름에 앞서 ‘너는 누구 편이냐’는 관등 성명을 요구하는 그 방식에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야당은 번번이 속수무책이다. 그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는 누군가들은 종종 ‘개인기’로 상황을 전복하고자 한다. 예컨대, 새정치민주연합 강동원 의원의 대선 투·개표 부정 의혹 제기 같은 것 말이다.

누구든 무엇이든 의심할 수 있다. 그게 민주주의다. 천안함 사건이 북한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박정희가 독재자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특히나 국회의원은 ‘면책특권’을 갖고 있는 존재다. ‘무한’까지는 아니지만 표현의 자유와 권리를 특별히 더 존중받는다. 언론 자유의 권리에서 시작돼 국회의원의 권한으로 정착된 헌법적 보장 사항이다. 다양한 주장이 통용되고, 다원적 대표성으로 사회가 유지돼야 함을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다.

하지만 종종 공허해진다. 그게 민주주의임을 알면서도, 야당으로선 어느 정도 불가피한 전략이란 것도 인정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강동원 의원이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단 형식논리를 기꺼이 인정하면서도, 그 주장의 실질에 대해선 동의하기 어렵다. 의심할 권리가 있으니 어떤 것이라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은 때때로 대단히 곤혹스러운 논리다. 대통령이 불쏘시개로 삼은 교과서 개정 논리 역시, 의심할 부분이 있으니 개정의 여지가 있다는 형식논리를 갖추고 있다.

인정이 어려운 주장을 완력으로 밀어붙이려는 태도는 우리 편이건 아니건 곤란하다. 사실 인정은 증거에 의해야 한다. 오류 기술로 인해 교과서 개정이 필요하다면 그 증거를 논해야지 애먼 주체사상 학습을 끌어와선 곤란하다. 대선 투·개표 부정 의혹도 이미 격파된 근거들을 재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어떤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강동원 의원의 주장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다만, 이런 상황이 올 것임을 경험적으로 뼈저리게 알고 있을 야당이 왜 늘 이런 지경인지.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선거, 그나마 어렵지 않던 선거의 산수가 더 단순해지고 있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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