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기업인 사면이 이뤄지는 분위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주요 대상이다. SK그룹과 한화그룹은 이에 호응해 정부 시책에 적극 협조한다는 입장이다. SK그룹은 2017년까지 2년 동안 4천 개의 인턴십 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포함해 2만4천 명의 청년 인재 양성을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한화그룹 역시 하반기 채용 계획을 상반기의 2배 규모로 늘리는 등 2017년까지 청년 일자리를 1만7569개 만들기로 했다. 박근혜 정부가 ‘노동개혁’을 세대 간 문제로 접근하면서 청년 고용과 숙련노동자 퇴직을 사실상 연동시키고 있는 데 대한 반응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기업인의 사면에 대해서는 그간 비판이 많이 제기돼왔다. 결국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현행 법령을 어긴 사례가 다수인데 단지 재벌그룹의 총수라는 이유만으로 ‘특혜’를 받아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노동자의 생존권 투쟁에는 유난히 관용을 보여주지 않는 정부가 오로지 재벌 총수에게만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형평성을 잃은 행위라는 비판도 나온다.
최근 롯데그룹의 총수 일가가 경영권을 둘러싸고 분쟁을 벌인 사건도 기업인 사면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는 데 한몫했다. 다수 언론은 롯데그룹의 신격호 총괄회장이 0.05%밖에 안 되는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에 비판적 목소리를 높였고 정치권 역시 재벌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다. 정부도 롯데그룹의 ‘막장 드라마’를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한 광윤사와 주요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L투자회사에 대한 소유관계 등을 파악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일각에서는 롯데그룹이 한국과 일본 양국에 걸쳐 성장한 기업이라는 점에서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과 두 아들이 한국어보다는 일본어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는 점, 롯데그룹 지배구조가 일본 기업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 등이 기업의 국적(?) 문제에 대한 논란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기업이 어느 국가의 소속인지를 그런 기준으로 따지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한 일이 됐다. 대표적인 국내 기업으로 인식되는 삼성전자 같은 회사도 외국인 투자자에게 배당을 하고 국외에서 거둬들인 수익에 대한 세금을 해당 국가에 납부한다. 이런 상황에 기업의 ‘국적’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오히려 논점에서 일탈하는 것일 수 있다.
핵심은 우리 사회에서 대기업 집단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경영 원칙이 무엇이냐는 점이다. 한국 경제는 인접국인 일본과 유사한 면이 있지만 재벌에 대해서는 판이하게 다른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일본 재벌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정에 의해 사실상 해산됐다. 대기업들은 오너에 의한 수직경영이 아니라 계열사가 상호지분을 소유하고 ‘메인뱅크’라 불리는 주거래은행을 통해 자금을 융통하며 비교적 수평적 관계의 사장회가 의사결정을 하는 기업집단의 형태로 변모했다. 이에 반해 한국은 독재정권이 재벌 총수와 정부 발주 공사 등에 대해 ‘직거래’를 하고 부채를 동결 또는 감축해주는 정책을 펴면서 오너 중심의 운영을 고착화했다.
두 모델은 한때 동아시아적 발전 모델로 연구 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극복 대상’으로 인식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 변화에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재벌 개혁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근대적 원칙의 적용과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지우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무능한 경영인은 언제든 교체할 수 있지만 ‘총수 일가’는 교체할 수 없다.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면 친족 승계가 가능하다는 주장도 이제는 극복할 때가 됐다.
글·그래픽 김민하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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