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52.9%의 국민은 국가정보원이 ‘내국인 사찰’을 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한다. 절반을 조금 웃도는, 공교로운 수치다. 정국이 ‘국정원 해킹 의혹’에서 한 걸음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절반의 국민이 갖게 된 의심에 대해 그 나머지 절반은 냉소적으로 관망하거나 아예 적극적으로 엄호하고 있단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 정도 여론 분포를 지니게 된 사건은 그 내용이 무엇이건 필연적으로 ‘진영화’된다. 무엇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지만 벌써 ‘국가 안보’와 ‘국익’ 논리가 횡행하기 시작했다는 건 이미 그 진영의 회로가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새누리당은 비본질적인 방법론에 집착하며 진실 규명을 하려는 듯 방해하는 모드에 돌입했다. 수만, 수억 개의 ‘0’과 ‘1’이 배열된 문제를 국정원 현장 조사로 어떻게 해보자는 것은 고약한 말장난이다. 국정원 직원 일동이 언론 플레이용 공개 성명을 발표한 희대의 규율 문란이 ‘한바탕 웃음으로’ 지나가는 것 역시 마찬가지 맥락이다. 국정원과 새누리당은 이미 ‘운명 공동체’다.
그러나 이 진영화의 문제는 숙명이 아니라 정치권력 의지를 재빠르게 간파하는 언론이 지속적으로 숙성시키는 문제라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 한국 사회에서 진실을 가장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집단, 갈등과 반목의 대립 구도를 만들어 사실을 묻어버리는 집단은 언제나 언론이다.
정치권력의 의지를 간파한 조·중·동은 국정원 해킹 의혹에 ‘적극적 침묵’을 택하며 사안을 가장 격렬하게 소극화하고 있다. 그들의 선택은 대담하다. 예컨대, 가 각각 국정원 해킹 의혹에 대해 ‘단독 보도’를 내놓았던 날, 는 방송통신위원회를 ‘빅브러더’로 지목했다. 가 비판한 방통위의 그 행위가 그른 것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이 시점에서 방통위를 ‘빅브러더’라고 부른다면 국정원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물론 한국 사회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언론에 그런 판단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취급을 받은 지 이미 너무 오래다.
지상파 방송의 무기는 저울이다. 여야를 저울에 올려놓고 사건을 계량적으로 나눈다. 여당의 주장에 ‘비계’가 많으면 잘라내고, 야당의 논리는 취할 것이 많더라도 덜어내는 방식이다. 얼핏 세련돼 보이지만 결국 사건을 협량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오히려 적극적 외면이 그 기록의 부재로 존재를 드러낸다면, 지상파 방송의 뉴스는 존재가 위장된다는 점에서 더 고약한 문제다. 종합편성채널은 그저 화끈하다. 팬덤을 향한 육박전이다. 4개 채널이 동시에 뿜어대는 소음 속에서 그 뉴스를 응시한 사람은 결국 ‘국가를 위해 일하던 비밀 요원을 정쟁으로 죽였다’는 환청을 듣게 된다. 국정원 해킹 의혹은 국가 안보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시도였는데, 민주화 경험만 투철한 집단이 몽니를 부린다는 착각을 신념으로 치환해버린다.
이번주 어떤 언론들은 ‘개인적 일탈’과 ‘피로감’이란 단어를 내놓을 것이다. 정부·여당은 벌써 ‘노동개혁’을 꺼내들어 이슈로 이슈를 막는 고전적 수법을 시전하고 있다. 전대미문의 파문이 그렇게 기획적으로 수습돼갈 때, 어떤 판단과 저항을 하느냐가 민주사회의 시민의식을 가르는 척도가 될 것이다. 정치권력과 언론의 공조, 조·중·동과 지상파 뉴스의 합작 속에서 분투를 벌이는 어떤 언론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다.
김완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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