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혁신’의 이름으로 등장한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 현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장은 사실 ‘무상’의 아이콘이다. 여전히 뜨거운 그 이름도 유명한 ‘무상급식’이 그의 대표적 정책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야권 연대’의 힘을 보여주며 진보 교육감에 오른 그는 무상급식을 통해 전국적인 인사가 되었다.
이뿐만 아니다. 임기를 3개월여 앞두고 교육감 자리를 홀연히 던지고 경기도지사에 도전하며 그는 ‘무상버스’를 주요 공약으로 들고나왔다. 당시 그의 무상버스 공약은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서 공격을 받았다. 보수는 당연히 설익은 포퓰리즘이라 맹비난했고, 진보는 그 대책의 구체적 프로세스가 공허하다고 비판했다. 비난과 비판 사이에서 그는 결국 패배했다.
그는 이후에도 몇 번 더 실패했다. 무상급식과 무상버스에서 보듯, ‘어젠다’를 제시하는 데는 능하지만 조직에는 약점이 있다. 홍보력 역시 국회의원을 해보지 않은 인사치고는 강점이 있지만 정무 감각은 검증되지 않았다. 무상버스 공약을 제시하며 그가 내놓은 공약은 ‘앉아서 가는 아침의 실현’이었다. ‘저녁이 있는 삶’만큼은 아니겠지만, 서울로 오가는 데 하루 에너지의 상당량을 뺏기는 경기도 거주민들에겐 상당한 호소력을 갖는 구호였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의장을 지낸, 경영학자 출신의 교육자. 중앙무대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란 평가를 받았지만, 막상 별로 성취해내거나 돌파해낸 것은 없는 정치인. 그가 새정치연합의 ‘키’를 쥐었다. 평가는 엇갈린다. 당내 기반이 워낙 취약한데다, 조건반사적 삿대질만 난무하는 야당 형편도 문제다. 워낙 악성적 조건에서 딸려나온 형편이라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의도하지 않게 ‘486-호남 물갈이론’이 먼저 알려지며 당 안팎의 경계수위는 벌써 극점까지 치솟았다.
당 밖의 상황은 더 녹록지 않다. 조·중·동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야당 내 계파 갈등을 증폭 중계하며, 아직 확인되지 않은 그의 색깔을 굴절시키고 있다. 채 펴보기도 전에 조·중·동의 ‘프레임 전쟁’에 패배했던 그의 무상버스 공약처럼 그도 그냥 꺾이고 말 것인가. 글쎄, 억지로 하는 긍정일 수도 있겠지만, 그가 그렇게 만만한 인물은 아니다.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해졌지만,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위원의 합의로 이뤄진 지금의 새정치연합 꼴은 어쩌면 김상곤 당시 교육감이 경기도지사 도전 선언을 하면서 이뤄낸 것임을 한 번쯤 낭만적으로 상기해볼 필요도 있다.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정당 개혁, 공천 개혁, 정치 개혁’을 주창하고 있다. 모두 원론적인, 두루뭉술한 내용이다. 차라리 오늘의 그를 있게 한 ‘무상’을 내세우면 어떨까. 바로, ‘무상공천’이다. 그의 무상버스가 실패했던 건, 너무 촉박했고 그래서 최종 목적지로 향하는 경로의 설계가 치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멍석도 깔리지 않았다. 다행히 지금은 시간이 좀 남아 있고, 불려나왔건 끌려나왔건 깔린 멍석에 올라선 상황이다. 무상의 의미는 ‘아무런 대가나 보상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제1야당의 공천 문호를 열 수 있을까. 그 미지의 회로를 설계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486-호남 물갈이론’과 같은 진부한 클리셰에 혁신이 갇히는 한 절대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단 점이다. 그를 그저 그런 교육감이 아닌 한국 사회의 오랜 관습법을 부수는 복지와 교육의 아이콘이 될 수 있게 했던 바로 그 마법의 ‘의제 설정’이 절실하다. 세상이 이미 아는 방법을 제시하는 건 ‘혁신’이 아니다. 그의 지금 타이틀이 혁신위원장 아닌가.
김완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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