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공백 한 달, 결국 선택은 황교안이었다. ‘사회통합형 총리’가 나와야 한단 목소리도 있었지만 결국은 공안검사 출신의 ‘미스터 국가보안법’이 낙점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유별난 판·검사 출신에 대한 선호도 다시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이번 정권 들어 총리와 총리 후보자 6명 중 법조인 출신이 4명이었다. 2004년 한나라당 대표 당선 직후 임명한 첫 비서실장은 판사 출신인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그녀는 정홍원을 공직자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으로 전격 발탁했고, 2012년 대선을 준비할 때 예상을 깨고 김용준을 공동선대위원장에 앉혔다. 안대희를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데려오기도 했다.
이 정도면 ‘법조 페티시’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물론 대통령 입장에선 인사검증을 통과할 만한 인물이 법조인 출신 몇몇뿐이었다고 항변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인과관계를 따져보면 애초에 인재풀 자체가 극히 협소하기에 그런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지금까지 지켜봐온바 후보군이나 실제 낙점받은 인사들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어차피 인재 기용은 코드 맞는 사람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더라도 이 정도로 특정 직군만 돌출되는 경우는 드물다. 몇몇 극우언론과 종편이 그 이유를 ‘분석’한 적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독 법과 원칙, 투철한 국가관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란다. 아니, 잠깐만. 뭔가 이상하다. 떠올려보자. 대통령이 기용하려던 인사 대다수가 각종 실정법 위반과 사회 평균을 까마득히 밑도는 도덕 불감증으로 비판받고 낙마했더랬다. 법과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법과 원칙을 밥 먹듯 어기던 사람들을 기용하려 한다?
세 가지 중 하나다. 1번, 유체이탈 내지 자아분열. 2번,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의 문제. 3번, ‘법과 원칙’에 대한 해석의 차이. 1번을 결코 배제할 수 없지만 의학의 영역이므로 일단 제쳐두기로 한다. 그렇다면 2번과 3번이 남는다. 2번은 꽤 설득력 있는 이유지만, 반복되는 ‘인사 참극’을 보면 이번 정권에 인사검증 시스템 같은 것은 원래 없거나 없는 것과 다름없는 상태라고 가정해야 한다. 즉, 시스템이 아니라 철저히 대통령 개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 이제 3번은 2번에 의해 강화된다.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고 대통령은 ‘법과 원칙’을 중시하는데, ‘법과 원칙’을 틈만 나면 어기던 사람들이 공직 후보로 계속 올라온다. 이분의 정신상태가 온전하다고 전제한다면, 우리의 ‘법과 원칙’과 대통령의 ‘법과 원칙’은 서로 다른 무엇이라고 봐야 합리적이다.
우리에게 ‘법과 원칙’은 누구나 지켜야 하는 보편적 규칙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화용적 의미에선 다르다. 박 대통령에게 ‘법과 원칙’은 특정 대상을 겨냥한 일방통행적 개념이다. ‘특정 대상’은 누굴까. 이를테면 ‘집단행동으로 사회 혼란을 부추기는 자들’이다. 강성노조, 진보단체, 비판언론 혹은 나에게 반대하는 사람 모두. 퍼스트레이디를 대행하던 딸의 뇌리에는 아버지가 대통령이던 시절 그런 자들이 격문을 쓰고 데모를 벌여 나라가 뒤숭숭했던 기억이 파편처럼 박혀 있을 테다. 아버지처럼 대통령이 된 딸에게 ‘법과 원칙’은 통치의 근간이고 또 그래야 했다. 불온세력·불순분자를 솎아내고 제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명분이기 때문이다. ‘사법’이라는 이름의 철퇴를 휘두를 자격을 갖추고 정교하게 휘두르는 테크닉을 체화한 전문가가 바로 검사와 판사다. ‘법조인이란 대체 얼마나 쓸모 많고 고마운 사람들인가!’
법조인 출신을 중용하면 ‘법과 원칙’이 바로 설까. ‘법과 원칙’을 중요시한다면서 탈법을 일삼은 자를 기용하려 하고, ‘법과 원칙’을 강조하면서 정작 자신과 우리 편에 적용하지 않는 것. 그런 모순적 행태를 보통 ‘전횡’이라 부른다. 대통령의 ‘법조 페티시’, 이건 취향이 아니다. 재앙이다.
박권일 칼럼니스트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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